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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쟁이

작은 방 한담 2008. 11. 3. 14:37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고 굳이 알 필요도 없는 일이지만 나는 광고로 먹고 사는 사람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내 출생은 카피라이터이되, 카피라이터로만 살 수 없기에 AE짓도 하고, AE짓만으로는 충당이 안되고 사람도 적고 그렇게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도 있으므로 가방모찌도 공공연히 하고 사람이 없을 때는 운전수부터 하역꾼까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면서 살고 있다. 아마도 대부분 소규모 광고업체의 같은 직종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모두 나처럼 살고 있을 터, 뭐라고 혼자서 개인의 신세타령을 늘어놔 봤자 객적인 소리일 것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광고판에서 만나 본 사람들 중에서 정확하게 광고 본판에 뛰어들어서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사는 이들은 극소수의 능력자들 뿐이다. 광고판에서 성공한 사람들 중에서 몇몇은 광고 외의 수입으로 자신의 생계를 이어가거나 혹은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는 일이 허다한데, 이유인즉슨
머리는 쓸만큼 써도 매출로 직접 이어지지 않으며 매출로 이어진다 해도 갑과 을의 고정적인 신분차별에 대한 억압이 늘 그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광고판의 갑과 을은 다른 갑과 을의 상태와 비교해 볼 때 시민계급과 농노의 수준정도의 차이가 난다. 물론 제일기획이나 다른 외국계광고회사같은 덩치 큰 곳은 제외하고 볼 때, 광고판의 갑과 을의 관계는 클럽에서 만난 원나잇스탠드보다 끈끈함이 덜하다. 하루 아침에라도 잘못 보이면 그 날로 모든 것이 끊기는 것은 물론이요, 한 번의 프로젝트도 견적서 하나에서 밀리면 그 날로 거래가 끊기는 것은 일상다반사다. 상거래 행위의 상도나 인간관계에서의 끈끈함 같은 것은 전혀 볼 수 없는 곳이 이 곳으로 자기가 데리고 있던 직원을 내치는 것은 봄날 나물 뜯으러 가는 것보다 수월하고 관포지교가 오월동주로 변하는 것도 너무나 쉽게 접할 수 있는 곳이다. 20년 가까이 광고판에서 뼈를 묻은 어느 사장이 [돈 벌려거든 광고판을 떠나라]라고 너무나도 자신있게 말하는 것을 직접 내 눈으로 보고 내 귀로 들었으니 오죽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직업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첫째로, 지금와서 별다른 일을 하기도 그렇거니와 두번째는 어쩌다 한 번 내가 창의력을 기울인 작품이 한 번 매체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기쁨을 볼 수 있으려나 하는 일장춘몽을 꾸기 때문이다. 두번째 부분은 소규모 대행사에서는 로또1등과 같은 부분이다. 소규모 대행사와 거래하는 업체라봤자 크기가 고만고만할텐데 공중파 CF는 언감생심이요 지면광고도 제대로 못 싣고 그저 찌라시로 홍보효과를 노리는 부류가 대다수이다. 그런 곳에서 내가 제안할 수 있는 매체와 컨셉은 당연히 제한된다. 하지만 어쩌다 한 번 큰 건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것. 대박의 꿈을 안고 인디언이 득시글대는 서부로 달려가는 포장마차들이 광고판 사람들인 것이다.
나는 원래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한다. 읽던말던 그냥 글을 쓰는 것을 미치도록 좋아한다. 그래서 이 직업이 적성에 맞으리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 상상력의 극한을 뒤집어 놓은 말초신경의 장난질에 불과하다는 것은 빼도박도 못하는 이 시점에서야 깨닫는다.
블로깅과는 별도로 지금 뭔가를 집에서 혼자 쓰고 있다. 이게 무엇인지는 나도 쓰면서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내가 머릿속에 가지고 있는 것을 흔들어 쏟아서 손으로 옮긴 뒤에 활자로 만드는 행위를 하는 것을 멈출 수 없다는 것은....아마도 내 천형이거나 내 천직이거나 이도저도 아니면 고질적인 병폐라고 할 수 밖에.
어쨌건 지금도 뭔가를 만들어 내야한다.

돈을 만들어야지
돈을 만들면 자유를 살 수 있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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