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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5.06 길냥이에 대한 추억 (재탕) 14
* 예전에도 썼던 글인데 다시 생각난 김에 끄적끄적*


시간은 흘러흘러 2004년정도 가을
그 날 누군가를 배웅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상점이 주르륵 모여있는 골목이 있었는데

원래 불빛 없는 곳으로 돌아다니는 성격이라 상점 뒷골목을 걸어서
집을 가곤 했다.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시라..그땐 그냥 그러고 싶었으니

그런데 어디선가
이옹이옹 하는 소리가 가냘프게 나는 거 아닌가
도둑괭이겠거니 하고 길을 걸어가는데
그 소리가 점점 가까이 오는거라
 
뒤를 살펴봤더니
이게 왠걸

버터빛 어린 고양이가 잉잉거리면서 오는데
진짜 잘 빠지고 이쁜 녀석이었다.
짐승한테 이쁘다는 말을 써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하여간 진짜 예뻤다. 다리도 길쭉길쭉하고
이목구비도 또렷(?)한게
사람이었으면 남자 수십명은 족히 피눈물을 흩뿌리게 생긴 고양이였다.
보자마자 암코양이라는 걸 알게 생겼었으니
대충 이해가 가실 것이다.

하여간 그 녀석이 갑자기 나를 보더니 다가와서
다리에 마구 얼굴을 비벼대는데
배가 고프다는 이야기였을 거다.

예나 지금이나 예쁜이가 달라붙으면 거절을 못하는 나는
부리나케 골목 앞 빛의 세계로 나가서 쏘세지를 나 와서
애한테 먹였다. (먹어도 되는지 안되는지 잘 몰랐다만)
게눈 감추듯 먹더니 아예 내 구두를 붙잡고 뒹굴기 시작.

정말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끝까지 올라왔지만
당시 나는 아버지 밑에 얹혀사는 처지였고
머리 검은 짐승도 안 거두는 아버지가 네 발달린 짐승을 거두실리 만무하니
그냥 아쉬움을 남기고 집에 돌아왔고
그 녀석은 횡단보도까지 쫒아왔다가 다시 돌아갔다.

그 때부터 장장 3개월여동안
그놈과 나는 거기서 밤에 먹거리를 나눠먹는 사이가 되었다.
그 골목을 지날 때마다 숨어서 야옹야옹 거리고 돌아보면 살짝 나오는게
무슨 연애질 하는 것 같았는데 하여간 그렇게 금수와의 데이트가 장장 3개월.
이제 고양이는 새끼 티를 벗고 성체가 되었는데 여전히 몸매나 용모나
늘씬하고 예쁘긴 마찬가지였다. 왜 가끔 일본 애니에서 고양이귀를 단 여자들이
나오나 했었는데  말이지...알 것 같더라니.

그러더니
어느 날
안 보이는거다.

-.- 사내라는 게 원래 그런건지
어느 날 정 주던 이가 사라지면 참 허하다.
한심한 족속이지.

그렇게 며칠 공치고 터덜터덜 집에 가던 어느 날
그 놈을 내가 발견했다.
그 골목에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다가가 보았더니
이게 웬 일

배가 불러있더라는 거지
그래서 사람들을 본능적으로 피한거고

근데 웃긴게
갑자기 기분이 확 나빠지더라
"어떤 개...개가 아니지. 하여간 어떤 새퀴야!"

이런 젠장
어떤 지저분한 거리의 수코양이가 내 천사같은 고양이에게 이딴 짓을.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아버지에게 맞더라도
집에 데려갈 걸 그랬나 싶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아,
이게 인생사 정해진 순간이구나. 자연의 섭리가 이런 거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난
오늘 이후 다시는 이 녀석을 못 볼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 녀석은 그 날 일정거리 이상 다가오지 않았고
가만히 날 보다가 먼저 사라져 버렸다.

그날 이후로
그 고양이는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몇 차례고 그 골목을 돌아다녀보았지만
그 뒤로는 그 녀석을 만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모 회원님의 글을 보면서
다시 그 때 일을 추억한다.

그 때 그 녀석을 집에 데리고 오지 않은 것이
잘한 일이었을까
아니면 잘 못한 일이었을까?

늘 인연은 머물렀다 떠나가는 것일텐데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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