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조.'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9.02.23 머리를 쓸 필요가 있나
하루종일 앉아서 만들어진 서류를 보면서 만들어진 포맷에 의해 작성을 하고 워드 좀 깔짝대다가 숫자좀 게산기로 맞춰보다가 아귀가 맞아떨어지는 걸 확인하고 요식적인 절차와 집단의 방침에 의거한 서류들을 정리하고 퇴근하던 시절의 월급이 지금보다 훨씬 많았다는 걸 생각해본다. 그 당시는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회사를 돌아가게 만드는 전산상의 그 [포맷]과 프로그램과 기타 필요한 부품을 제작해내는 사람들은 아마 나만큼 월급을 받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나는 나름대로 Creative라는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나조차도 지금 이 분야에서 하는 일은 예전과 별 다를 것 없는 책상물림이고, 진짜로 일을 하고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일은 [디자이너 혹은 개발자]라고 부르는 일군의 작업인들이 맡아서 한다. 하지만 그들의 대우는 그제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을 지도 모른다.
유교적 폐해의 한 부분일지도 모른다. 테크노크라트가 아닌 뷰로크라트에 대한 뭇 사람들의 선망과 대우에 대한 갈망이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간과하고 있는지 모른다. 만들어진 찬을 가지고 밥상을 정리정돈하는 급사의 월급이 주방장보다 많은 형국이 한국이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문화라는 것이 언제까지 이어질 지 모르겠다. 이미 쌓아올려간 집단의 공고함을 누가 깰 것이며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창조성을 중요시한다고 하면서 아이들은 그저 영어나 들이파게 하는 이 나라에서 필요한 것은 책상물림에 흰와이셔츠와 넥타이를 맨 자식들의 미래를 보고싶은 부모들의 발상일진대. 그렇다면 누가 무엇을 개발하고 그리고 창작하고 만들어서 새로운 것을 보급하려 할까? 그러면서도 지식사업 운운하는 꼬라지들을 보고 있으면 복장이 터져 나올 지경이다. 창작을 하고 새로운것을 만드는 것은 시대가 급속도로 변화하고 세계가 가까와지면서 더욱 힘든일이 되었고, 그 가운데에서 고유성을 찾아내는 일은 더욱 어려운 일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들이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문화는 그런 것 일체를 불허한다. 예전에 장영실이 세종대왕을 보좌하던 시절은 말 그대로 테크노크라트의 유일한 황금시대였을 것이다. 사대부의 집안에서 태어난 박연이 전국을 돌면서 돌을 갈아 악기를 만들던 시절의 크로스오버는 지금세월에서는 엿먹을 이야기인 것이다. 어쩌면 군사독재 발전드라이브 시절의 기술관료들만큼도 요즘은 대접못받는 시절이고, 그저 개발자들이나 크리에이터들은 회사를 만들고 유지시키기 위한 번견이상의 지위를 허락받지 못한다.
그나마 산업에서 대우를 받는 사람들이 저 모양이라면 3차문화사업쪽에서 시작되는 작가나 음악인들은 뭘 할 수 있겠는가. 그저 얼굴이나 갈아대고 가슴에 실리콘이나 넣어서 화면 앞에서 흔들어대는 수준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멜로디가 아닌 비트로 승부하는 시간이고, 가사가 아닌 단편적인 암기용 언어들만이 선택되는 시절이다. 뭐가 있어야 고민을 하고 열린세상에 대한 가치가 보장되어야 그나마 다른 쪽으로 식견을 넓혀보기라도 할텐데. 송창식과 송골매 이후로 가사에 대한 후벼파는 고찰을 가져온 유행가 그룹이 얼마나 될까? 그저 명멸하는 여름날의 반딧불처럼 잠시 기성음악계에 도전했다가 반짝하고 사라지는 수많은 언더들과 함께 출판사에서던져주는 몇백원의 인세를 받으면서도 무가지나 다름없는 책으로 눈물을 머금고 자신의 저작을 팔아대는 수많은 만화가와 작가들이 존재하는 곳.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머리를 써야한다고 하지만 그 말의 저 건너편에는  [자신의 창작]을 가져가기 위해 수많은 줄과 선과 끈과 가방과 노림과 접대와 기타 무형의 [책상물림적 생존방식]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건네져야만 하는 것들을 함의한다. 세상은 머리를 써야한다. 그 머리를 쓴다는 것의 의미는 단지 머리를 쓴다는 것이 아니라 머리를 어디에 둬야 할지를 판단해야하는 냉엄하고 욕지기나는 상류넥타이들의 자리다듬기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창조자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자신의 목에도 와이셔츠 칼라와 그 위에 넥타이가 곱상하게 덧대어지기를 바란다. 평생을 개발자로 일하겠다면 목매어 죽을 사람이 다반사인 곳이 우리가 터를 닦고 사는 이곳인 거다.
오늘도 우리회사보다 작거나 크거나 한 많은 곳에서 자신이 가진 능력 하나만을 믿고 수많은 사람들이 박봉을 무릅쓰고 번데기에서 나비로 탈바꿈하기만을 바라는 곳, 대한민국. 하지만 결코 나비는 꽃 없는 겨울에 날 지 못한다.
Posted by 荊軻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