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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1.24 인애불이(仁愛不異)란 개똥철학이런만 2
세기의 커플이니 브란젤리나니 하던 두 명의 배우가 별거하기로 합의를 한 모양이다.
사람이란 원래 그런 것이고 뜻이 맞지 않으면 서로 머리를 돌리는 것이 자연의 섭리라 하니
별 다른 부연의 말을 쓸 것이 없다. 실제로 요즘 세태가 그러하다. 글 쓰는 나도 그렇고...사는 건 어찌보면 참
쉬운 일이다.

두 외국 연예인의 이야기와는 별개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남녀가 서로 좋아하고 연애하는 감정은 3년이면 사라짐이라고. 
그럴 것이다. 고등학교시절 수학선생님 말씀이 생각난다. [XXX이나 000이나 3년 살면 같아보인다]고.
긍정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모를 일이다.

 3년이 지났는데도 에로스적인 사랑만을 가지고 두 사람의 만남이 존속된다는 것 자체가 문제 아닌가?
사람이라는 동물이 주야장천 불타는 욕망의 화신도 아니고 그러지야 않겠지. 하지만 사랑이라는 단어가 너무 쉽게 일정량의 특성만을 규정짓는 단어로 좁혀지는 요즘 작태가 한심스러울 뿐이다. [3년기한의 사랑]이라는 건 할리퀸 로맨스에나 나오는 [욕정의 소산]일 뿐인 게고...내가 아는 사랑이란 적어도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중용과 예기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인자인야(仁者人也)라. 
어짊은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다. 원래 어질 인자란 사람 인(人)자에 두 이(二)자가 붙은 글자. 
옛 성리학자들은 인자인야를 "어짊은 사람을 사람답게 여김"이라 풀이하지만
요즘 학자들은 인자인야를 이렇게 풀이한다. "어짊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인(仁)의 근본은 사단의 측은지심인 바, 사람을 보고 마음에서 불쌍히 여김이 있고 그를 긍휼히 여김이 있는 것이
곧 인의 발로이니. 대충 결과론적으로 풀이해보면 사랑이 측은지심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연속극보면 가끔 주인공이 애인에게 
"동정따윈 필요없어"라고 말하는데 천만의 말씀, 상처받은 이의 자존심을 제한다면 동정심이라는 것은 고귀한 감정의 발로인 것이다. 사람이기에 가능한 감정 중 하나다. 그리고 내 생각엔 인간이라는 동물이 보이는 가장 이타적인 행위가 동정심이라는 거다. 막말로, 걱정해 준다고 쌀이 나오나 밥이 나오나?

자식은 없지만 
부모가 자식을 내려다보면서 드는 사랑의 감정이라는 것은 기쁜 것 뿐 아니라 뭔가 가슴이 먹먹하고 불쌍해 보이기도 한 것이 안에 들어차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경험해 보지 못한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최대치는 이 정도다...-.-;;)  

살면서 얼마나 많이 측은지심을 느끼는가. 가족에게 느끼지 않는가. 친구들에게도 느끼고, 연인에게도 느끼고, 가끔 여유가 생기면 지나가는 길고양이에게도 느끼지 않나. 누가 시켜서 느끼는 것도 아니고 내가 특출나게 감수성이 예민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 그냥 사랑하기에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모자식간에만 있는 것도 아니요, 친구나 애인이나 형제자매간에도 이루어질 수 있을 뿐 아니라 만물에 미친다면
이것이야말로 사랑의 고갱이. 하지만 너무 쉽게 하위개념으로 치부해 버리는 정(情). 바로 그것 아닐까? 

우리가 쓰는 정이라는 말이야말로 측은지심과 인자인야가 같이 들어가 있는 [사랑]이라는 말의 진화형 아닐지.

아,

먼나라에 아무 상관없는 빵선생과 졸리양의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갈겨 쓴
이론적 토대가 빈약하기 그지없는 개똥철학 한 토막.
 
p.s 1) 정이 아무리 고결해도 금(金)이 요즘은 그것보다 귀한 것 같긴 하더라.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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