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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3.21 백거이의 장한가, 그리고 양귀비
漢皇重色思傾國(한황중색사경국) : 황제 미인을  귀히 여겨 경국지색 찾았으나 
御宇多年求不得(어우다년구부득) : 천하를 다스린 지 몇 년 지나도 찾지 못했다.
楊家有女初長成(양가유녀초장성) : 양씨 집안에 딸이 있어, 이제 막 성숙하니
養在深閨人未識(양재심규인미식) : 깊숙한 규방에 있어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백거이의 장한가는 이렇게 시작한다. 때는 당나라 현종.  개원의 치라 불릴만큼 현명한 치세를 벌인 당 현종은
나라가 살만해지자 유흥을 찾기 시작했다. 그 때 그의 나이 쉰이 넘었다던가 일흔에 가까웠다던가. 하여간 그 때 눈에 띈 여인이 그 유명한 양귀비.  원래 자식의 마누라감이었으나 빼돌려서 자신이 후궁으로 들였다지.

하여간 자석도 극이 있고 (대부분의)사람에게도 짝이 있다지만 이 둘은 정말 궁합이 잘 맞았는지
혹은 지극한 현종의 사랑이었는지 실제로 당현종은 양귀비를 맞이한 다음부터 국무를 접고
침전에서 나오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 이야기를  시인 백거이는 딱 두 줄로 말한다.

春宵苦短日高起(춘소고단일고기) : 봄밤은 너무 짧아 해가 이미 높이 솟으니
從此君王不早朝(종차군왕부조조) : 이 때부터 임금님은 아침 조회에 가지 않았다.  

당제국의 황제는 후궁이 삼천, 그러나 삼천의 사랑이 모두 한 명에게 내려가니 그 애틋함이 오죽할까.
하지만 비단금침이 해피엔딩은 아닌 것. 황제라는 권력에 조심성이 없어지면 승냥이들이 이빨을 보임은
당연지사. 황제의 자식이나 다름없던 안록산은 반역의 깃발을 드니 이것이 [안록산의 난]이다.

안록산, 타타르족이었다는 그는  효용이 절륜한 자였다. 
비록 살쪄서 움직이기도 힘들어보였으나 황제 앞에서 호선무를 출 때는 바람처럼 움직인다는 사내였다.
 [이 커다란 뱃속에는 황제를 위한 충심밖에 없어라] 라고 외쳤던 사내는 어제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치고 황제를 쫒으니, 황제는 가마에 실린 채 수도를 버리고 탈출을 하였다.

탈출을 하다하다 성난 군사들이 황제에게 창검을 들고 말을 한다
[나라를 망친 요부를 모실 수 없으니 황제께선 그를 죽이시오]
갈기잃은 사자에게 무슨 힘이 있으리. 
사랑한다 말로 그렇게 읊조리던 여인을 그대로 성난 군사들에게 넘겨주니 양귀비는 이름모를 사당에서 목이 매어 죽임을 당한다. 그리고 천운인가. 안록산의 난은 평정이 되었다.

여기까지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이야기인데
시인 백거이는 여기에 마지막 종장을 더한다.

당현종이 그렇게 비명에 양귀비를 보낸 뒤 도저히 살 수 없어서
무당을 보내 양귀비의 혼을 부른다.
그러자 양귀비는 세상의 일을 잊었노라며 정표를 다시 줘서 사신에게 돌려보낸다는 이야기가 이야기의 끝이다.

장한가의 끝은 절묘호사. 
많은 이들이 당시에 암송하며 불렀다던 애절한 부분이다.

在天願作比翼鳥(재천원작비익조) :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기를 원하고
在地願爲連理枝(재지원위련리지) :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었기를 원하였다.
天長地久有時盡(천장지구유시진) : 높은 하늘도 장구한 땅도 다할 때가 있지만
此恨綿綿無絶期(차한면면무절기) : 이들의 한은 이어져서 끊어질 때가 없으리라.

비익조는 날개가 각각 암수 하나뿐이라 둘이 같이 붙어야 하늘을 날며
연리지는 뿌리 다른 두 나무가 같이 붙어 한 몸이 되는 것을 뜻한다.
남녀간의 사랑을 이렇게 잘 풀어 쓴 글이 또한 있으랴.

눈치 챈 분 또한 있을 것이다.

저 싯구에서 90년대 청춘들의 눈시울을 적셨던 유덕화 형님의 홍콩멜로영화
[천장지구]의 타이틀이 또한 나왔다는 것을.

* 근데 지 궁할 땐 죽여놓고 살만하니까 옛 여자 찾는다는 스토리는 좀 맛간다. 황제는 위대하다 이건가...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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