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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8.13 과산화수소수
외조부모묘를 정말 오래간만에 시간내어 찾아갔다.
외조부묘묘라고 길게 둘러 쓰는 이유는 두 분이 합장이 되어서 봉분 하나를 쓰기 때문이고 오랫만에 시간을 냈다는 이야기는 충북영동에 외가 선산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고등학교 이후로 외가 시골에 찾아가 본 적이 없다. 일가 외가쪽이 몽땅 서울에 올라와 살기도 했거니와, 시골을 지키시던 둘재 외삼촌이 돌아가신뒤로는 영 그 곳과의 인연이 끊긴 때문이다.

각설하고, 나도 나이가 먹으니까 땅이나 핏줄에 대한 귀소본능이 생긴 것인지. 아니면 이제는 머릿속에 풍경을 넣어두어도 평생 잊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충동적으로 부모님을 따라 나섰다. 그런데 이거. 정작 선산은 있는데 지키는 사람이 없으니 충북 야트막한 야산이 머나먼 정글의 메콩강 골짜기더라. 여름철 길 없는 야산에 올라가 본 사람은 알겠지만...이거 사람이 함부로 돌아다닐 수가 없다. 설상가상 비까지 왔고 우리 외가는 100% 찰진 황토다. 넌더리가 날데로 나서 이젠 못가겠다 싶을 때 산소가 나오더라. (고라니 두마리를 봤다. 그 야트막한 산에서...0.0)

하여간 올라갔다 왔더니 양팔에 칼자국 투성이다. 물이 오를대로 오른 풀은 칼보다 예리해서 스치면 그대로 혈흔이 올라온다. 패잔병의 꼬락서니로 서울까지 올라온 뒤에 집에 돌아와서 약국에서 과산화수소수를 오랫만에 구입했다.

예전에 약 중에 가장 싫어했던 소독약이 이 과산화 수소수였다. 상처가 아픈건 둘째치고 이 소독약은 들이 부으면 통증보다 더 심한 아픔을 가져다 주었기 때문이다. 혼자 집에서 솜에 묻혀서 두 팔뚝을 닦는데 여전히 아리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그 쓰라림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게 된 나는 어지간히 나이를 먹은 모양이다.

툰중한 통각을 주는 곪은 상처보다는 그 상처를 째는 예리한 통증이 내 몸에 훨씬 좋다는 것을 알고
찢어지게 아픈 것 보다는 상처부위가 붙어서 가려운 것이 몸이 나아지는 신호라는 것을 파악하는 나이가 되었다.

아픔은 어릴적이나 지금이나 같은데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이번에 본 시골도 여전히 풍광은 비슷했지만 들어오는 광경이 달랐다.

내 어릴 적 같이 뒤놀던 또래들은 이제 아무도 시골에 남아있지 아니하고
어머니보다 훨씬 나이 많은, 어머니의 오빠대 노인네들만이 변하지 않는 동네 느티나무 정자 아래 모여 있고
느티나무 아래 흐르던 개울은 보기 좋게 시멘트로 복개가 되어있고
옛 시골집 뒤에는 양옥 아파트가 들어서 있었다. 

남은 것은 죽은 자와 하늘과 산뿐인데
정작 얻어 온 것은 팔뚝의 상처뿐. 그리고 그 상처를 쓰라리게 소독하고서도 별 감흥없이 고개를 끄덕거리는
외손자만 남아있는 세월이다.

세월은 앉은 자리에서 추억하면 그 얼마나 쏜 살같은가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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