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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1.26 차를 팔았습니다. 6
  2. 2010.02.22 내 차, 스뎅이. 8
제가 사회에 나와서 제 손으로 돈을 벌고
처음으로 차를 산 것이 2001년이었습니다.
아담하게 몰고 다닐 수 있는 차 하나 있었으면 했습니다.

처음으로 내 차가 생겼을때,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기분이 좋았습니다.
참 빨랐습니다. 밟는대로 나갔습니다. 차가 있으면 생활이 편해진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좋은 차였습니다. 자동차는 뽑기운이라고들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이 녀석은 그 중에서도 괜찮은 놈이었던 모양입니다. 한번도 주인 속을 썩인적이 없습니다. 펑크 한 번 나서 약속시간에 늦은 것 말고는 한번도 속썩인 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잘못은 제가 더 많이 저질렀습니다. 일천한 운전실력으로 하얀 자체에 여기저기 기스를 내 놓은 것은 다 제 잘못입니다. 어떤 놈이 와서 문대고 간 적도 있고, 제가 아니라 저랑 같이 있던 이가 옆판을 다 긁어버린 적도 있었습니다만 자동차 스스로는 참으로 우직하게 저를 위해서 굴러갔습니다.

한 해가 지나고 두 해가 지나고
올해로 9년째. 내년이면 10년이 되는 해입니다.
예전같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태우면 속도가 나지 않았습니다. 에어콘을 켜면 소리만 요란할 뿐 앞으로 빨리 가지 않았습니다. 저도 그 동안 세월의 풍파를 겪었고, 자동차도 나이를 먹었습니다. 둘 다 맨 처음 사회에 나왔을 때의 날카로움과 속력은 사라지고 허덕허덕 길거리를 가기 급급해진 연식이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사람과 자동차는 다릅니다. 사람은 자신이 늙는 것을 감내하지만 자신이 타는 자동차가 늙는 것은 견디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오늘
9년을 탄 차를 팔았습니다.

흰 색 차라 외국으로 수출은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국내에서 중고로 다시 넘겨질 것입니다.
자동차 도매인이 그리 많이 뛰지 않았으니 값을 좀 쳐주겠다고 했습니다. 많이 혹사당하면 값이 떨어지는 것이 자동차입니다. 아버지는 더 타고 될 것을 파는 것 아니냐고 군소리를 하셨지만 저는 속으로 조금 탔던 것에 대해서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돈을 더 받아서가 아니라 자동차를 그나마 덜 고생시켰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9년입니다.
부모와 피붙이를 제외하고는
저하고 가장 길게 생활을 해 온 녀석입니다.
매매과정은 정신이 없었습니다. 이리저리 서류가 옮겨다니고 인감이 옮겨다니느라 제대로 작별도 하지 못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본넷 한 번 만져보지 못하고 녀석을 타인의 손에 맡기고 집으로 왔습니다. 한참을 이래저래 있다가 불현듯 주차장을 내려다 보았는데 그 녀석이 없습니다. 왜 팔았을까. 너무너무 후회가 됩니다.

저절로 눈물이 흐릅니다. 
참 정직하고 충성스런 녀석이었는데.
무슨 일이 벌어져도 그 안에 타면 목적지까지 간다는 신뢰가 있는 녀석이었는데.
팔지 말 것을 그랬나 싶어서 눈물이 납니다. 내 과거사가 한 쪽 찢겨서 날아가는 기분이 듭니다.

오늘부로 저는 그녀석에 대한 권리를 상실했습니다. 며칠 뒤에 제 자동차는 다른 주인을 만나서 도로를 움직이고 있겠지요. 만화 [오 나의 여신님]을 보면 여주인공이 '모든 기계에는 요정이 붙어있다'고 말합니다. 만화일지라도 사실이었으면 하는 바램들이 몇 개 있습니다. 아마 제 차의 요정은 성실하고 얌전하고 충직한 녀석이었을 겁니다. 부디 좋은 주인을 만나서 마지막으로 도로를 달리게 될 그 날 까지 몸 성히 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정말 고마왔습니다.
다시 만날 일은 드물겠지만
다시 만나면 오늘 못다한 인사를 하겠습니다.

정말 정말 좋아했어요.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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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 사회생활 시작하면서 큰 맘 먹고 뽑았던 차가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아버지가 갖고 있던 구닥다리 엘란트라를 몰다가 맨 처음에 내 차를 뽑았을 때
살짝 엑셀에 발냄새만 맡게 해도 진저리치면서 앞으로 부앙 나가던 녀석이
이제는 사뿐히 는지르고 지려 밟아도 설설설 움직여
나온지 얼마 안 되는 새 차들이 비웃으면서 싹싹 추월해 갈 정도로
나이를 먹어버렸습니다.

그래도 곱게 타려고 무척 노력했고, 딴에는 먼 길은 안 가져간답시고 아껴서(?)
10년 차량에 걸맞지 않은 엄청나게 낮은 주행키로수를 자랑하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성능은 움직인 거리에 비례하지 않고 흘러간 세월에 비례하는 게 자동차입니다.
이젠 노인네가 다 되었지요.

가만히 신호대기를 하고 있으면
쿨럭쿨럭 덜덜덜 진동이 옵니다.
어차피 사람이던 기계던 물건이던 인연이던
만나면 헤어질 때가 있고 일어서면 누울 때가 있는 법이죠.

아마 더 탈 날은 탔던 날보다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 때가 되면 새로운 차들을 고르고,
저는 카다록을 보면서 이게 좋은지 저게 좋은지 고민할테고
이 녀석은 아파트 아래 혼자 세워진 채 무념무상
주인의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절 태울 준비를 하고 있겠죠.

사람도 10년을 사귀기 어렵고
반려동물도 10년을 채우기가 어려운데
강산이 변한다는 시간을 같이 지켜준 녀석입니다.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이 녀석을 팔 때가 되면
전 아마 울 것 같습니다.

[오!나의 여신님]에서 여주인공 베르단디가 그러죠.
기계는 모두 기계의 요정을 가지고 있다고.

아마 그럴 겁니다.
다른건 몰라도
이 녀석의 요정은 참으로 현숙한 요정일겁니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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