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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함

작은 방 한담 2010. 2. 12. 01:53
1.
정말 아주아주 예전
길을 걸을 때 여자를 차도쪽에 세우지 말라는 교회 여선배의 이야기를 밥먹다가 들었다.

"왜요?"
여자나 부처님이나 그 당시에는 별로 달리 구분이 없었던 시절의 우문.

눈으로 혀를 끌끌차던 여선배는 그냥 한마디를 던졌다.
"그게 예의야."

그날 이후 여성하고 같이 다닐 일이 있으면 그래서 내가 길 바깥에서 걷는다.  
그러라는 법도가 있는 건 아닌 것 같지만 웬지 선배의 말이 잊혀지지 않아서 그런 듯 하다.

사실, 사내만 있는 집에 태어나서 남중남고 사회과학대에 군대까지 다녀온 인간이
여자를 몇번이나 만나고 접할 기회가 있었겠나. 게다가 남의 이목에 별 상관 안하는 패션감각을
갖고 있으니 더더욱 곤란한 것을.

사실 많은 남성들은 이미 이 정도는 풋사랑을 시작하는 시절에 알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 여선배가 나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난 영영 몰랐을지도 모른다.


2.
사회 초년병 시절에 참 많은 것들을 배운다. 명함 잡는 법부터 인사는 어떻게 하고 
회식자리 예절부터 이래라 저래라 잡다구리 한 것들을 직장사수에게 배운다. 어떨 때는 참 하릴없는
짓거리라는 생각도 드는데, 개중 몇몇은 [배려]라는 면에서 내가 놓치고 있었던 것이구나 하는 것들도
분명 존재한다. 

사람은 혼자 사는 동물이 아니고, 계급과 연령이 뒤섞여 사는 사회에 존재하는 한, 예절이라는 것은
귀찮아도 감수하고 배워야 하는 부분이다. 특히 거창한 것이 아닌 작고 미세한 부분일수록 중요하다.

큰 일은 오히려 사안에 따라 건너뛸 수도 있다.
하지만 작은 것을 놓치면 사람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손짓 하나 몸짓 하나로 [뼈대있는 집안에서 난 놈]이 되거나 [밥상머리에서 풍각질을 배운 놈]으로 격하되거나
하는 게 세상이 나를 보는 눈초리인데. 그래서 작은 일이 큰일보다 무서운 법이다.


3.
하지만
아무리 허례가 많고 딴에는 귀찮고
혹은 이심전심으로 알겠거니 하고 넘어가는 결례가 있더라도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그 사람을 내가 얼마나 생각하나]에 대한 것으로 넘어가면 또 다른 말이 이어질 것이다.

마음 가는 만큼 잘 하게 되는 건 어디서 누굴 대하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내가 그 사람에 대한 마음을 상대가 알아챌 정도가 된다면야 소소함 따위는 중요치않게 되겠지만
어디, 세상에 그렇게 되기까지 가깝게 지낼만한 인연을 찾기 쉬운가. 

그래서 사람이 가까울수록 소소한 것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리라.
특히나 점점 목이 뻣뻣해지는 나이가 되어감을 느낄 때라면.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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