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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판이 찢어지다

수련장 2008. 11. 2. 15:26
식탁의자를 뒤로 미는 순간 의자가 평소와 다르게 강한 마찰감이 의자다리를 지탱하는 것을 느끼고 의자를 치운 뒤 부엌바닥을 살펴보았다.  마치 송곳으로 파 놓은 것 처럼 밑바닥이 여기저기 패여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일부러 이런 경우를 방지하고자 의자에 천으로 자리보호대까지 씌어놓은 상태였는데. 재빨리 의자를 뒤집어 보았다. 천보호대는 뻥 뚫어져 있었다. 어차피 사람이 앉으면 바닥와 접촉하는 부분은 늘 일정한 부분이기 때문에 그런지 몰라도 넝마조각처럼 한 군데가 뚫려 있었고 그 사이로 뭔가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재빨리 보호대를 벗겨내자 플라스틱 밑받침이 톡하도 두조각이 난 채로 떨어져나왔다. 원래 의자를 만들 때 나무를 보호하기 이해서 말굽의 편자처럼 아랫쪽에 대 놓은 바둑돌만한 원형의 플라스틱이었다. 그런데 그게 두갈래로 쪼개진 것이었다. 다시 의자 다리를 살펴보니 그곳에는 플라스틱을 끼워넣기 위해 박아넣은 못이 끝이 삐죽히 나온 채 발바닥의 가시처럼 의자 다리 빝바닥에 존재하고 있었다. 저녀석이었다, 우리 집 부엌을 다 파헤쳐 놓은 녀석이.

망치 못뽑이로 간단하게 제거하고 쪼개진 플라스틱은 버린 채 다시 보호대를 씌웠다. 이제서야 밀리는 느낌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부엌바닥은 회생불가능한 상처를 남겼고 참으로 보기흉하고 상태도 안 좋은 결과만을 가져왔다. 차라리 이럴 줄 알았다면 세심하게 한번씩 살펴보고 무슨 문제인지 봤어야 했던 것이다. 의자를 보호해주려던 프라스틱이 쪼개지면서 오히려 거기 달려있던 못이 마루를 죄다 파헤쳐 놓는다니. 그리고 그것을 막아야 했던 천보호대가 범인을 숨겨주는 역할만을 하고 있었다니. 처음에 하나가 잘못 되기 시작하자 모든 선의로 포장되었던 것들이 뒤틀려 악의를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궁극적인 문제는 의자를 함부로 관리한 내 잘못이 더 큰 노릇이다. 못이 솔직히 무슨 잘못인가. 그 아이는 애초에 직공이 만들었고 의도했던 대로 그 자리에 꽉 박혀있기만 했을 뿐인것을.

사소한 부주의 하나로 모든 일이 엉망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다. 그리고 나는 소소하지만 그런 경험을 많이 해 봤고 가끔은 네가 감당이 되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눈사태가 되어서 나를 덮치는 경험도 몇 번 해 보았다. 황망하기 이를 데 없는 시간을 지내고 그 뒤 자숙의 시간을 거친 뒤 돌아보면 그 모든 일의 시작은 참으로 사소한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생활에서 항상 주의하고 조심하면서 산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그리고 그것이 전적으로 내 개인의 잘못이라면 몰라도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제3자의 사소한 실수 덕에 일어나는 사고라면 나는 그 때 어떤 방법을 택할 수 있을까?

사람은 살면서 두가지를 대비해야 하는 것 같다. 하나는 사고를 처음에 막아낼 수 있는 주의력과 조심성을 갖고 사는 것이고 또 하나는 상처를 감내하면서 살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하면서 사는 것이다. 전자가 항상 가능하다면 후자는 불필요한 노파심에 불과하겠지만 개인적인 경험상 인생에는 후자가 더 많이 필요하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마루바닥에 파인 생채기들을 본다. 이리저리 무두질하고 대충이나마 처리를 하면 지금처럼 울퉁불퉁거리지는 않겠지만 상처가 있었다는 것을 감출 수는 없는 일. 아마 저 모습을 그대로 보면서 사는 것이 인생일게다. 하지만 마루에 더 이상 상처를 내지는 말아야겠다. 아직도 마루를 쓸 일은 너무나도 많고 부엌의 의자에 앉아야 하는 것은 내가 생명체로 살아가는 이상 어쩔수 없는 필연적 선택에 기초한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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