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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2.12 총과 사나이의 등 6
서부극을 볼 때 가장 아련한 것은 마지막의 권선징악이 아니다. 그 이후의 주인공의 행보.
주인공은 악을 해치우고 서서히 멀어져간다. 그 역시 정상적인 사회에서 용납되지 않는 선한 살인귀일 뿐.
사람들은 세상 짐 지고가는 어린양을 볼 때 처럼 허리에 탄대를 차고 저 멀리 석양을 향해 사라지는 사나이의 널찍한 등을 보며 고독한 사내가 짊어진 삶의 무게를 본다. 그것은 그야말로 환타지. 마초이즘이 불러일으키는 최고의 환상.

[셰인]에서 아란 랏드가 그랬다. 꼬마의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며 저 장대한 애팔래치아 산맥으로 쓸쓸히 멀어져가는 사나이의 호방한 포즈에서 그 누가 [오오 대협이시여!]를 외치지 않는가

[석양의 7인]에서도 율 브리너가 그러했고, [석양의 7인]의 원작이었던 [7인의 사무라이]에서도 주인공 일행은 가타부타 고민을 해결해 주고 바람처럼 사라졌으니, 그것이야말로 사내들이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상상력이다. 타인을 위해 자신의 완력을 행사하고 자신의 무욕(無慾)을 만천하에 드러내며 고독하게 세파와 홀로 싸우는 포즈로 돌아서는 모습. 하지만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협객지도의 표본일지도 모른다. 세월은 흘러흘러 [스트리트 오브 화이어]에서도 몸매얼굴 죄다 디바급인 다이안 레인을 팽개치고 윌렘 데포만 두들겨 팬 뒤 저 멀리 사라지던 마이클 파레의 모습에서도 같은 것이 나부끼니 그 아니 사나이의 향수를 불러 이르키지 않는가. 올 해 본 일본애니메이션 [천원돌파 그렌라간]에서도 마찬가지. 진정한 사나이중의 사나이는 등짝(!)만을 보인다.

그러나 오욕칠정을 가진 사내가 어찌 그러고만 사나?
집도 없고 절도 없는 절세고수들에 의해 도덕률이 지켜지는 세상이라니 참으로 끔찍하지 않은가.
그들에게도 고향이 있고 집이 있고 그때문에 고민하고 고민하다보면 장길산 같은 대의무도한 역적으로 불리기도 하고 홍길동같은 침략군이 되기도 하는 것인데. 인간의 삶이라는 것은 단순히 하나의 목적으로는 측량불가하다.

결론적으로 시스템에 저항하는 사람에게 가족이란 하나의 장애물일 뿐이고,
그것을 가볍게 제해 줘야만 부담없이 목숨을 걸고 싸울 수 있다는 지극히 간편한 해결방법 아닌가. 그래서 정의의 편은 악과 맞서 싸워도 남겨질 게 없으니 오히려 후련한 것인가. 욕심이 없고 미련이 없으니 정의로와 지는 것일까?

그래서 나는 서부극 중에서 [하이 눈]이 최고라고 믿는다.
세상이 비뚤어져도 악에 맞서 싸우고
열나 한심한 작자들만 주위에 있어도 끝까지 그들을 위해 싸우고
마지막에는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미련없이 떠나가는 것이다.
그래.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영웅의 해피엔딩이지.

(아아...왕비 마마. 최고예요!)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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