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1.01.06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2
은행에 입사한 지 3년째 되던 해였던가 아니면 그 전이었던가
나름대로 뜻한 바 있어 대학원에 가려고 했다. 그래서 서강대 언론정보대학원에 원서를 냈다.
서류심사까지는 통과했다. 그리고 교수와 면담이 있었다.

그 날도 스산하니 추운 날이었다. 작은 정원만한 동산을 가로질러 외우기도 힘든 사람이름 붙은 건물 안에서 기다리던 시간이 생각난다. 그리고 교수와 만났다. 희한한 일이었다. 일대일의 독대였으니. 면접이 아니었던건가. 

하긴 그 당시엔 대학원을 가겠다는 사람들 자체가 드물었다.IMF가 터지고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이었을 뿐 아니라 언론정보대학원이라는 곳이 미디어쪽으로 나가는 사람들을 뽑는 곳이었는데, 희한하게도 그 때는 지원자 자체가 없었던 모양이다. 각설하고, 난 그 교수와 함께 면담을 시작했다.

"이번에 저희 대학원에 서류를 넣으셨죠"

"예"

교수는 한참을 침묵하더니 말을 했다.

"아무래도 곤란합니다."

"뭐가요"

"입학 말입니다."

"무슨 결격사유가 있습니까."

"나이가...많지 않습니까."

"나이가 무슨 상관입니까?"

교수는 날 쳐다보더니 이렇게 말을 했다.

"어차피 대학원에서 졸업하고 나면 서른이 넘습니다. 그 뒤에는 취직을 해야지요. 하지만 이쪽업계에서 취직을 서른 넘어서 하기는 힘듭니다. 더군다나 저희 학부에서 가르친 사람이 취직을 못한다는 건 저희로써도 난감한 상황이고요. 그래서 아무래도 입학에 결격사유가 있다고 생각이 되는 겁니다."

10년 전의 일이다. 서른 살도 되기 전의 청춘에게 교수가 한 말이라는 것이.
그때는 참으로 순박하고 세상 허투루 살았던 듯 싶다. 교수의 그 한마디에 나는 그냥 고개만 숙이고 묵묵히 돌아서 그 학교를 나와버렸다. 지금 같았으면 일단 앞에 앉은 인간 옥수수 너댓 개는 출장보내고 다시 면담을 시작하거나 합의를 했거나 둘 중의 하나였겠지. 그런데 난 그냥 '다 어렵구나...' 이러면서 세상살이 힘들다는 표정으로 길을 나섰다.

이해가 안 가는 바는 아니다. 그 때는 어려웠다. 취업이 학교를 좌우하는 시절이었을테니까. 각박함이 사회를 갉아먹던 초창기 시절 아니었던가. 좋게 봐줘서 교수의 속내는 그런 것이었을게다. 여기서 학업을 포기하게 되면 저 인간 그냥 다시 은행으로 돌아가서 돈 잘 벌지 않을까. 늦게 꾼 꿈의 끝이 마냥 달콤한 법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겠지.

참으로 애석하게도
난 교수의 말과는 상관없이 퇴사하고 다른 길로 가버렸고, 그 길에서 직업을 구하는데 1년 반이 걸렸다. 그리고 연봉1100으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내가 하고 싶은 길을 가는데 혼자 바닥바닥 바닥을 기어서 직업을 따내는 데 1년 반이 걸린거다. 그 시간이면 그 학교에서 웬만한 건 배우고도 남았을 시간이었다. 사람이 나이를 먹어서 못한다고 하는 법이란 없다. 더군다나 배움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제일 쉬운게 배우는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그 길이 가장 진입하기 어려웠다. 

왜 바꿔서 생각을 못했을까.
저 나이 되어서 이 문을 두드릴 정도라면 이미 이판사판 각오를 하고 들어오는 사람이라는 것을.

작년에도 똑같은 일을 당하고 나니
딱 10년 전의 그 날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더라.

늦었다. 늦었다. 배우고 나면 이미 늦으리.

천만의 말씀.

계단으로 올려주는 수고를 덜지 몰라도. 산을 올라가려는 사람의 의지가 있다면 절벽을 파서라도 길을 내면서 가는 것이 사람일진대. 단지 올라가는 시간이 한없이 더뎌질 뿐. 결국은 올라가고야 말 것인데.

-
사람마다 팔자라는 것이 있고 운명이라는 것이 있는 모양이다.
택시나 엘리베이터는 못 타고 도보나 계단으로 목적지까지 가야 하는 인생도 있는 것인 모양이다.
늦어진다고 어찌하겠는가. 그게 내 것이 아닌 것을.
중간에 힘들다고 울면서 다시 되돌아가지만 않는다면
언젠가는 도달할 것인데.

도달하고야 말 것인데.







Posted by 荊軻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