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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

작은 방 한담 2010. 10. 31. 21:34
고모님이 무릎을 다치쳐서 병문안을 다녀왔다. 원래는 아버지와 가려고 했는데 아버지는 조카를 돌보시겠다고 안 가신단다. 원래 우리 집안이 게으른데다, 자기 식솔이 있으면 절대로 바깥으로 나가지 않는 경향이 있다. 아마 나도 그랬고 앞으로 가족이 생기면 또 그럴 것이라고 생각은 들지만 어쨌거나. 각설하고 아버지는 동생이 아픈데 나하고 어머니를 보냈다.

어머니를 모시고 주말에  드라이브를 했다.

"얘, 광화문쪽으로 가 보자."

"거기 막히는데 왜 그 쪽으로 가요?"

"나 그쪽 바뀐 다음에 한 번도 못 가봤어, 그리고 네 조카 태어난 담에 외출도 못해봤잖아."

그렇게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시는 분이 손녀가 생긴 담에는 그냥 집에만 계셨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이리저리 뱅뱅 돌아서 광화문 광장까지 가서 경복궁 앞에서 유턴을 하면서 천천히 시내를 돌았다.

"많이 바뀌었구나. 아이고 이렇게 변했네"

어머니는 내심 밖에 나와서 즐거우셨던 모양이다. 날씨도 무척이나 화창했더랬다.
병문안을 벼락처럼 끝내고 (고모 미안해요) 어머니는 점심을 드시고 싶어했다.

"어디 근처에 먹을 데 없을까?"

"엄마, 기왕 여기까지 나왔으니 삼청동이나 가요."

"그래그래, 거기나 가 보자"

뭔 바람으로 거길 가자고 했는지 나도 모르겠는데, 하여간 삼청동에 스파게티를 먹으러 어머니랑 길을 나섰다.
차를 좁은 골목 주차장에 세워놓고, 선남선녀가 디카 하나씩 끼고 어슬렁 거리를 길을 모자가 터덜터덜 걸으면서
가을날의 서울시내 데이트에 나섰다. 예전에 친구들하고 왔을 때는 여기가 아니라 이쪽길로 올랐는데 뭐라고 어머니는 연신 중얼거리시며 여기저기 둘러보고 계셨다. 잘 모시고 온 것 같았다. 그리고는 여자들만 바글거리고 사내라고는 나 하나밖에 없는 스파게티집에 들어가서 모자가 이태리 국수를 시켜먹었다. 그 덕에 지금까지 속이 버글거리긴 하지만 어쨌거나 즐거웠다. 즐거워하는 어머니를 보는 게 즐거웠다.

"얘, 호떡이나 하나 사 가자."

집에 돌아가는 길에 어머니는 길 옆의 호떡집에 들려서 나를 쳐다보았다.

"뭔 호떡이오."

"네 아버지 호떡이나 하나 주지 뭘..."

호떡 네 개에 4천원.

"아이고 비싸네."

하지만 연신 웃으시며 좋아하시더라.
날이 참 좋더라. 파란 하늘에 점점이 흐르는 구름이 좋더라.

언제 또 어머니랑 둘이서 와 보겠는가
언제 또 해 보겠는가.
모자가 같이 골목길을 걸어다니는 일을.

그러고보니
나 어렸을 적에는
참 많이 엄마 손을 잡고 여기저기 다녔던 것 같은데

시간이 너무 빨리 가는구나.
후회할 겨를도 없이 너무 빨리 가는구나.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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