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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교통사고

수련장 2011. 2. 3. 12:35
아버지 집에 들렸다가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고속터미널 사거리에서 직진을 받아 들어오는 중이었는데
갑자기 옆 차선의 고속버스가 쑥 밀고 들어오더니 쾅~하는 굉음과 함께 내 차를 들이받는거 아닌가.
방어운전이고 뭐고 소용없었다. 옆차가 밀고들어오는데 무슨 방어운전, 재수 옴 붙었구나 싶었다.순식간에 백머리 접히고 드드득 소리가 나는데 그 짧은 창졸간의 순간에도 정신이 아득해졌다.

아, 내 차~ 뽑은 지 얼마나 됐다고 ㅠㅠ

차를 옆으로 세워놓고 고속버스 운전기사가 내릴때까지 기다렸다. 
"아니 운전을 어떻게 하시는 거요!"

"갑자기 오른쪽에서 차가 밀고 들어오는 바람에...죄송합니다."

가만 보니 머리가 이미 하얗게 센 기사분이다.
자기가 잘못했다고 일단 고개 숙이고 들어오는데, 그것도 한참 연배많은 분이 그러시니 소리질러놓은게 후회가 된다.
차는 서울 - 연무대. 연무대라. 
설에 연무대를 가는 사람들은 무얼까. 어차피 거기 사는 사람들도 있겠고
...그리고 아들 보러 가는 사람들도 있겠지.

"설날인데 조심해서 가십쇼."

"예"

대충 차를 보니 내 차에 난 흠집은 별로 없고, 버스에서 붙은 도료만 좀 붙어있었다. 생각보다 내 차가 통뼈인듯 별 이상은 없는 것 같기도 했고, 무엇보다 설날 아침부터 도로에서 드잡이질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버스 보내고 집에 차를 몰고 들어왔다.

내 옆에 누군가 타고 있었으면 더했을까. 아마 체면을 봐서라도 좀 더 뭐라고 실갱이를 벌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젠 화 내고 싶지가 않더라. 3년만 더 젊었더라도 불같은 성정을 주체하지 않았겠지.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랴. 늘 일상은, 재난은, 복과 화는 내가 대비한다 하더라도 나를 피해가는 것도 아니고 지나치는 것도 아니다. 일희일비하며 삶을 살아가기에는 세월이 너무나도 길고 짧다는 걸 느끼는 중이었다.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화를 안 내고 그냥 보낸 것은 잘 한 일이었다. 내 스스로의 화를 참지 못하고 기분을 참지 못하면 모두에게 더러운 설날이 되었을 것이다. 손님들도 성질이 났을테고 기사는 정초부터 낙담을 했을테고 나는 왜 이렇게 인생에 더러운 일만 생기냐며 자학을 하고 있었겠지.

연산군이 이런 글을 남겼더랬다.

인생여초로 회합부다시라. (人生如草露 會合不多時)
인생은 풀잎의 이슬같아 만날날이 많지 않구나.
어차피 그렇게 조금씩 만나며 지나갈 일,  미련을 두어 무엇하랴.

세상의 일체가 꿈이요 바람이요 거품이요 번쩍이는 번개와 같은 것일텐데



나도 나름대로 나이를 먹어가는 모양이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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