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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이라는 것

수련장 2009. 4. 28. 23:18
비가 오기 전 화창했던 봄날 점심
가끔 등장하지만 여전히 익명으로 나타나는 후배와 오랫만에 점심을 먹었다.

기독교라는 베이스를 일단 무시하고
갑자기 등장한 인연이라는 화두.

인연은 있는 것인가?
우리는 있다고 생각했다.
인연은 만드는 것인가?
우리는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결국 이 이야기는
고집멸도와 자신의 성화(聖化)와 본래면목에 도달한 경우에
누군가를 찾을 수 있느냐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모든 욕심을 버리고
 모든 아집을 버려서
 모든 인간이 나무토막같이 보임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이 인간으로 보인다면
 그것이 운명 아니겠습니까?"

그것이 우리가 내린 결론이었다.

아,
그러나 사람의 인연이라는 것은
어느 순간 하늘에서 떨어지는 공을
우연히 내가 손을 뻗어 잡음과 같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가 내게 무엇을 바라고 옴도 아니오
내가 그에게 무엇을 바라고 감도 아니고
그저 억조창생이 들고나는 파도처럼 오고감에 밀리다가
같이 어느 순간 맞닿은 것일 뿐이나
그 확률의 엄정한 희박함 앞에서
우리는 한없이 초라해지는 것이다.

내 스스로 무언가를 이루지 않으니
무언가 스스로 올 것이라 생각하지만
세상사람들은 노력(勞力)이라는 것에
더욱 말을 많이 쓰고 있다.

어차피 내가 이 세상에 온 것과
내가 나라는 사람이 된 것은
내 노력이 아니고 타인의 노력함도 아니고
그저 하늘이 박하고 후함없이 내려준 용태일 뿐이다.

노력은 인연을 잇기 위한
허함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가성화에 이를 것이며 누가 본래면목을 찾겠는가
그저 허탄한 노력을 오늘도 경주할 뿐이로구나
인연만이 그러하랴?
세상 모든 욕심이 다 그러하다.

갑자기 후배가 머리깎을 생각이 없느냐 묻길래
늙어서 선방(禪房)을 만들지언정 세상을 뜰 수는 없다 하였는데
그것도 욕심이 아닌지 모르겠네그려.

하긴 나야 욕심도 많고 노여움도 많은 사람인데
쉽게 움직일 수 있으랴.
하지만 모든 게 1년 전과는 다르게 보임이 확실하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 시작은 기독교적 첨언으로 시작하여 끝은 범어로 끝나는구나. *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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