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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4.23 나는 어떤 사람인가 & 개인적인 감상


나는 아직도 가끔 블로그가 아닌 도구로 일기를 쓴다. 
일기라고 해 봤자 며칠 뒤에 돌아서 읽으면 돈과 여자에 관한 일이 전부다. 얼굴이 화끈거릴 지경인데
당시의 소회를 써 놓은 것이라곤 그런 것 밖에 없으니 나도 참 한심스럽기 그지없다.
매천 황현 같은 분은 망해가는 조국의 모습을 그리도 세세하게 기록을 하셨건만...그릇이 다른게지.

각설하고,
사람이 나중에 스스로의 삶을 돌이켜 보고 그 것을 몇 줄 글로 갈음해본다 하였을 때
내 삶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쉽게 글 쓸 수 있는 이가 현대에 몇이나 될까.
하지만 내가 어떤 사람이었다고 후대에 알리고 싶은 욕망은 지금도 옛날과 마찬가지리라.

이 책은 선비들의 자서전. 그 중에서도 짧게 자기를 평한 글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
벼슬길에 현달하여 이름을 높인 선비들의 자성이 반이오,
불우한 환경 덕에 처사로 엮인 사람들의 글이 반이다.
하지만 그 속에 있는 것은 누구나 다 솔직한 바, 스스로의 삶을 정리하는 글이라 생각되는 곳에서는
거울을 마주보고 말하듯 엄숙하고 진솔하게 변하는 모양이다.

그 중에서도 중종때 형조판서까지 지낸 이자 라는 양반이 자신의 삶에 대해 쓴 글은
무섭기까지 하다.

"선을 좋아하길 독실하게 하지 않고 악을 미워하길 용맹하지 않았다. 그래서 한 평생 그렁저렁 보내고 하루하루를 허랑하게 지냈다."

이 구절을 읽는데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이 양반은 연산군 때 벼슬을 시작한 사람이다. 왕의 눈을 피해 하루 종일 술만 퍼마셨다.
그리고 중종반정이 일어난 뒤에 조광조와 함게 언관에 제수되었다.
훈구와 사람이 붙었을 때는 중도로 살아남았다. 그리고 조광조는 죽는다.

그렇게 살다가 50이 넘은 지금에 와서 저런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마음에 맺힌 것이 얼마나 많았으랴.


이야기가 옆으로 샜는데, 어쨌건
스스로의 살아온 길에 대해서 준엄하게 이야기하는 책. 예전부터 이런 종류의 책은 있어왔지만
상당히 많은 부분이 점점 체계화되는 느낌이고 갈수록 좋은 컨텐츠로 만들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보다 두꺼운 책이긴 한데,
스스로 한적한 곳에서 고인들의 삶을 맑은 물 삼아 내 얼굴을 비춰보는 것도 좋으리라.

* 추재기이의 작가 조수삼의 자서전도 들어있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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