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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0.14 길을 걷다 모녀를 보았네
논현 사거리를 지나고 있었네
횡단보도에 정신놓고 서 있었네

그런데 누군가가 갑자기
"저기요." 라고 말을 거네

햇빛에 살인을 했다는 뮈르소가 생각났지만
여자 목소리인지라 뒤를 돌아보았네
아줌마였네 똘망한 딸네미도 옆에 있었네

무지 이뻤네

뮈르소는 나쁜 놈이었네
저절로 목소리가 공손해지네

"왜 그러세요?"

"경복아파트가 여기 어디인가요?"

아니 이런 미모의 아주머니가
언덕 두개는 넘어야 하는 경복아파트를 찾고 있네
자동차가 있다면 모셔다 줬겠지만 난 뚜벅이었네

"여기가 아니라 차 잡아타고 한참 저 쪽으로 가셔야 하는데요"

아주머니는 낭패한 얼굴로 나와 딸네미를 쳐다보았네
갑자기 쓰레기통에 버렸던 측은지심과 긍휼지심이 마구마구 재활용되어 나타나네
아주머니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더니 핸드폰을 통째로 나에게 넘기네

"제가 이쪽 지리를 잘 모르는데...어떻게 가야 하는지 알 수 있을까요?"

하얀 핸드폰
절대반지였어도 받았을 것이네

어떤 망할 놈이 이런 미인과 딸네미를 길거리에서 헤메고 다니게 하는건지 의분이 일었네
전화를 받고 설명을 들었는데
나도 통 모르겠네
상호를 보고 검색을 해 보려고 해도
내 스마트폰 비슷한 핸드폰은 잘 안되네
아이폰으로 기필코 바꿔야겠네

겨우겨우 대충 가는 길을 전해듣고
아주머니에게 택시타고 어디에서 내리라고 말해주었네
아주머니가 나를 보더니 살짝 웃네
딸네미도 나를 보더니 살짝 웃네

태어나서 가장 보람된 일을 한 것 같네

아줌마와 딸이 횡단보도 너머로 사라지는 걸 보았네
젊었을 때 참 많은 사내들이 한숨을 쉬었을 것 같네
세상만사가 다 그런 것 같네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도
기분이 무척이나 좋았네

난 참 단순해지는 것 같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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