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의 중요성'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9.04.07 힐데브란트의 노래(Das Hildebrandslied) 10
독일의 고서사시.
놁은 군인의 노래.
양희은 누님의 [아~ 다시 못올 흘러간 내청춘~]보다 좀 더 애절한 이야기다.

*--------------------------------------------------------------------*
[니벨룽겐의 반지]를 읽어보면 아시겠다만
맨 마지막에 지아비의 원수를 갚기위해 혈육까지 도륙내어 버리는
복수의 여왕 크림힐트를 [에첼왕](아틸라 디 훈의 독일 표현) 앞에서
일도양단 해 버리는 늙은 무사가 힐데브란트다.

힐데브란트도 원래 아틸라왕의 식객이 아니었다.
고트왕 디트리히 폰 베른이 정치적 압박에 못 이겨 훈족의 왕 아틸라에게 객장으로 잡혀오는 바람에
그의 충신이자 병기장 (갑옷을 만들고 입히는 사람이라는데...아마 당시에는 기사중 최고 실력자가 이걸 맡은 듯)인
힐데브란트도 같이 잡혀 온 것.

떠나기 전에 힐데브란트는 아들을 고국에 두고 온 처지.
그리고 남의 나라 아틸라 대왕 밑에서
왠 난장이의 보물단지를 가지고 남매끼리 싸우는 동족상잔에 끼는 바람에
못 볼 꼴 이리저리 보신 분 되시겠다.

그러다가 30년만에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 늙은 노장.
그런데 고향 어귀에서 일단의 군사들을 만났으니
그 장수의 이름은 하두브란트. 바로 자신이 핏덩이일 때 이별한 아들이라.

이름과 통성명을 통해 힐데브란트는 자신의 아들임을 알았으나 하두브란트는 일언지하에
늙은 아비의 말을 거절한다. 왜? 내 아버지는 저 멀리 변방에서 죽은 지 오래라고 믿었으니!

고대의 전사들이란 원래 그런 모양이지.
자식이 거는 싸움을 피할 수 없다고 믿은 그는 전사로써 아들을 맞기로 결심한다.

"오, 신이시여, 운명이 닥쳤나이다. 나는 외국 땅에서 육십번동안 여름이 겨울로 바뀌고 겨울이 여름으로 바뀌는 것을 보았다. 나는 항상 최전선에 있었다. 폭풍이 요새에 몰아칠 때도 나는 살해되지 않았는데, 지금 나의 자식이 칼로 나를 죽이려고 하니, 먼저 그를 죽이지 않으면 그가 도끼로 나를 치겠구나."

그리고 싸운다.

기록은 여기까지.
전승에서는 힐데브란트가 자신의 손으로 아들을 죽였다고 한다.


*----------------------------------------------------------*

이 이야기가 전해 진 건
고대의 낡아빠진 책에 의해서가 아니다.
중세 수도원의 수사들이
기도서 뒷면에 글자연습을 하느라고
그동안 전해지던 시를 그대로 필사했다고전해진다. (그때는 책이 있었나보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결말이 없다.
글자연습 하다가 지친게 틀림없던가
선임수사가 "그래, 그쯤이면 됐다" 라고 말했거나
수도원 원장에게 기도서 뒤에 낙서하는 게 걸렸거나
하여간 클라이막스 이후의 필사가 더 이상 전해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요즘 말로 하면
A4 이면지에 누가 [춘향가]를 써 놨는데
원본은 사라지고 그게 남아서
[춘향가 A4 본]이 남게 된 것이라는 것.
근데 쓰다가 팔이 아파서
[거지 이몽룡이가 남원 관청에 들어섰는데~]에서 끝난 정도?


사람은 그래서 기록을 이리저리 남겨야 하는 것인가 보다.

나도 슬슬 인터넷을 줄이고 일기를 다시 써 볼까...
Posted by 荊軻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