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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와주세요

작은 방 한담 2011. 4. 22. 18:45
일을 보러 지하철 역을 걸어 올라가는 중이었다.

한 명의 사내가 입구 근처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것을 발견했다.
멀끔한 신사복을 차려 입은 사내였다.
그 사내는 주저앉아 있었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마치 세마리 원숭이 조각중에 [보지 않는 원숭이]조각처럼,
얼굴을 거의 가린 채로 쭈그리고 앉아서 동상처럼 가만히 앉아있었다.
가까이 다가간 나는 넓적한 골판지 하나와
그 골판지에 휘갈겨 적은 글씨를 발견할 수 있었다.

[도와주세요. 집이 없습니다]

골판지 옆에는 오백원짜리 동전이 하나 떨어져 있었다.


갑자기 가슴 한 구석이 찢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양복을 갖춰입은 사내를 보고 든 얄팍한 동지의식이었을까? 아니면 나도 곧 저럭게 급전직하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들어온 연민이었을까? 사내는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고, 동전 자체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냥 얼굴을 가리고 싶다는생각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듯 보였다.  나는 그냥 멍하니 사내를 쳐다보고 있다가 돌아왔다.
동전도 없었다.
수많은 거지와 행려를 보면서 지나다녔고, 때로는 그때그때의 감회에 차서 동전 몇 푼 던져주는
의기양양함도 갖고는 있지만 나는 그 사내에게 아무것도 줄 수가 없었다.

집에 돌아와서야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가슴이 아팠는지

지금까지 구걸하던 사람들은 적나라한 타자(他者)의 모습이었는데,
그 사람은 그 상황이 안 되더라는 것이다. 그래, 그 얄궃은 양복 하나때문에 그런 것이다. 타자가 자신의 모습으로 미끄러져 들어오는 감정을 겪은 것이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나는 도망치고 싶었다.

그 사내도 나와 같은 심정이었을 거라는걸
그제서야 나는 알았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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