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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이 짧다

작은 방 한담 2012. 1. 24. 20:13
입이 짧다는 것은 사전적으로 찾다보면 편식한다 내지 소식한다는 뜻으로 나온다. 어떤 뜻으로 쓰건 간에 나는 다 해당한다. 식성이 가탈스러운 것 때문이 아니라 소화기관이 용납을 하지 못한다.

기름진 것을 남들만큼 먹거나, 알콜을 먹는다던가. 혹은 오늘 먹은 양 만큼을 내일 또 먹는다던가 하면 무조건 화장실에 가거나 체한다. 체하면 거의 죽어난다. 조모님께서도 체해서 돌아가신 바 있고 (하긴, 장수하시는 분들 중 나중에 돌아가시는 건 음식 소화 못 시켜서 돌아가시는 경우도 상당수 된다.) 어머니 닮아서 위장이 안 좋은 경우도 있지만 나 같은 경우는 굉장히 심한 경우다. 거기에 역류성 식도염+ 과민성 대장증상까지 있으니 살아서 세 끼를 먹고 지금까지 일생을 살아왔다는 것이 대견할 뿐이다.

문제는 이게 사회생활을 하면서 엄청난 페널티를 준다는 것이다.
사람들하고 같이 뭘 먹으러 가면 일단 화장실부터 체크하는 게 기본이고, 화장실 없는 음식점은 아예 가질 않는다. 사람들하고 약속을 잡으려면 한 끼는 굶거나 대충 허기만 때운다. 그리고 나서 만나서 먹을 때에도 신경은 신경대로 쓰면서 산다. 그나마 운동을 해 대면 활동대사량이 늘어나니까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지만 요즘처럼 운동을 할 수 없는 계절이나 특별한 기간이 있다면 먹자마자 화장실로 직행하거나 체해서 얼굴이 하얗게 된 채로 쓰러져 버리는 것이다.

그나마, 나하고 몇년, 혹은 십여년을 같이 부대껴온 사람들이라면 이런 일을 알고, 이해도 하거니와 애매한 음식 먹으러 가자는 말은 하지 않는 편인데.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나 두주불사형이나 식도락가들 같은 경우라면 참 애매한 처신을 할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여자를 처음 만나면 정말 괴롭다. 어디 하소연할 수나 있나. 맨 처음 만난 자리에서
"전 기름진 음식이나 술 먹으면 화장실 갑니다"라고 말할 셈인가? 그렇게 말 하고 몇분이나 같이 붙어있을 수 있을까.

하여간, 올해 구정을 쇠면서 정말 지독하게 한번 더 앓아누웠다. 이번에는 아예 발에 마비가 오고 오한이 올 정도로 심하게 체했더랬다. 나중에는 위 아래로 끊임없이 밀려나오는데... 이런 식으로 한번 더 체하면 아마 그냥 죽어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그 전날 별로 먹은 게 없었다는 거다. 아마 그 전전날이나 그 주의 첫번재 월요일인가 좀 많이 먹은 게 그대로 뱃속에 남아있다고 믿는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건 생리학적으로 말이 안 되지 않는가. 사람이 뱀도 아니고 먹은 걸 며칠간 뱃속에 넣어 둘 리도 없고.

나이를 먹을수록 입은 점점 더 짧아질 수 밖에 없다. 지금보다 소식을 하고 지금보다 더 많이 음식을 가려먹는 수 밖에 없겠지. 하지만 과연? 이라는 생각을 한다. 나는 언젠가는 또 체하고 밤을 새는 날이 올텐데. 아무리 조심하고 조심해도 언젠가는 또 탈이 날텐데. 먹거리라는 것은 나에게 행복이 아니라 또 하나의 고민이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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