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8.11.03 사는게 안 힘든 사람이 어디 있겠나 2

길을 가다가 초등학생 멱살을 붙잡고 물어보자
이 백회혈에 피도 안 마른 자식아 인생이 즐겁냐 라고 하면  십중팔구 초등학생은 이렇게 답할 것이다
아 냅둬 건들지마 살기 힘들어라고.
축생으로 태어나서 구관조처럼 말할 수 없는 동물들이나 그냥 묵묵하게 사는거지 인생으로 태어나서 두 발로 걷기 시작하면 고해의 파도에 온 몸을 던지게 되는 것이다. 기독교가 정당시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태어나 살수록 불교가 말하는 고집멸도의 삶이 확실한 진실중의 하나라는 것을 인생들은 나이가 먹으면서 깨닫게 된다. 더군다나 대부분의 국민이 찰나의 이익에 빠져서 부나비처럼 인생을 단견하며 돌진하는 대한민국에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이 진리가 어찌 체득하지 못할 종류의 것이겠는가?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내 머리는 삼라만상 우주의 고해가 다 들어와 있는 것처럼 복잡하며, 가끔은 인생 뭐있어 최진실처럼 쫑낼까 하는 급박한 결단까지 수차례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는 마당인데 하물며 나보다 훨씬 처지가 절박하고 하루벌어 하루먹는 게 안 되는 인생이라면 나보다 심하면 심했지 득도하는 삶을 사는 이는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삶을 산다는 것은 공포와 자기보상을 동시에 짊어지고 다니는 운명이다. 쉽게 목숨을 내던질 수도 없고, 자기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쉽게 발을 뺄 만한 여건이 안되는게 태반이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가직 고민조차 채무관계처럼 여기며 살아가는 것이 보통이다. 뭐 어쩌겠어. 이것이 내 운명인 것을. 혹은 덤덤히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알콜이라도 혈관속에 흘려보내면서 머릿속이라도 소독되기를 바란다. 젠장, 이게 다 꿈이었으면 좋겠다라고 여기면서 다음날 아침의 두통과 숙취로 [죽고싶다]를 외치면서 치열하게 사는 이율배반적인 생활의 쳇바퀴를 돌리는 시지프스의 삶을 사는 것에 익숙해 진다.
몇 주 전 존경하는 목사중의 한 분이 주일날 설교에서 절망을 피해가는 법에 대해서 설교 할 때에 마지막까지 남는 말이 하나 있었으니  세상의 고민은 내가 접한 것 보다 훨씬 심각하지 않다. 마음의 문제가 훨씬 크고 그것에서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는게 이야기의 논지였다. 옳은 말이다. 내 스스로가 만드는 공포와 절망의 구렁텅이가 현실보다 크지만 그 공포와절망은 곧 현실로 구체화 된다. 늘상 보아오는 환타지중의 하나다. 공포가 실체화 되어서 사람을 갉아먹는 부분. 그것이야말로 삶의 고난 그 자체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내 마음의 짐을 덜어놓을 만큼 심리상태가 고도로 안정되어 있는 사람은 드물다. 그것은 부단한 인내와 노력뿐만 아니라 의도한 수양의 결과물이다. 그렇기에 절망에 빠진 사람들은 늘 최악의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시기, 이런 경제환경 속에서는 그것이 더욱 힘들어진다. 사람들은 삶에서 공포를 놓지 않지만 극한으로 치닫게 되면 자기보상의 미련을 내려놓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존심을 버리게 되고 그 안에서 자포자기의 위안을 얻는다. 물론 이것이 종교적으로 돌아가면 본래면목을 찾을 수 있는 법열의 단계까지 올라가겠지만 그렇지 못하고 현실에서 자기를 놓아버리면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는 서울역 지하보도를 아침에 걷다보면 그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바로 내 모습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절망이라는 이름 대신 자신을 잃어버리고 끈질긴 삶을 영위하는 모습들을 보게 된다. 그들을 보면서 위안을 얻을 수 있을까? 아니다. 그들은 단지 또다른 내 자아일뿐이다. 현실과 현상태의 밑바닥을 허무는 경계선은 생각보다 얄팍하다. 언제든지 넘어갈 수 있지만 한 번 넘어가면 다시 돌아오기 힘든 군사지역 철조망 같은 것이다.
이 모든 생각과 절망적인 상념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선을 넘지 않고 그나마 인간다운 자존심을 회복하고 살아가야 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여러가지 요소가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몇몇은 신앙일 것이고 몇몇은 가족일 것이고 그리고 또 몇몇은 생명을 내 주고도 꺽지 못할 내 자신의 미래에 대한 비전일 수도 있다. 인생은 평안함이라기 보다는 고난의 바다에 떠서 언젠가 건너편에 육지가 있을 것이라고 믿고 부단히 노를 저어가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젓다가 지쳐 죽어버리는 수가 태반이고 그 누군가가 육지에 도달했을거라는 풍문만 들려올 뿐, 나 혼자 타고 있는 일엽편주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 지 아는 사람도,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는 전인미답의 황량하고 야만적인 세상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가야하는 이유는 일단 내가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이고 그것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고 나를 보호하는 껍데기가 조금씩 얇아질수록 진행하는 과정 자체에 대한 의문이 일어나고 슬프고 억울하고 외롭지만 어쩌랴.

이게 인생인데.

Posted by 荊軻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