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전부터 자다가 침을 삼키는데 목이 갑자기 화끈거리더라.
아마도 또 찾아오는 목감기려니 하고 있었는데 어젯밤에는 좀 심하게 욱신거려 아침에 이비인후과를 찾아갔다.
목감기엔 내과보다 이비인후과가 훨씬 나은데...젠장, 내가 사는 동네나 일하는 곳 근처에 이비인후과는 아무리 찾아도 보이질 않는다. 이 동네는 강철 목구멍을 가진 사람들만 사는건가. 그래서 결국 강남터미널까지 갔다.

"어, 이거 유행이네."
의사아저씨의 말씀. (이상하게 내가 가는 병원의 의사선생님들은 죄다 용모가 비슷하다. 뿔데안경에 약간 꿈꾸는 듯한 인상들인데....이것도 무슨 정형화가 되어있는건지 모를 일이다.) 급성편도염이란다.

어릴 적에 그렇게도 많이 걸렸던지라 어머니가 심각하게 편도선 제거를 해 버릴까
(아니 왜 내걸 나한테 상의도 없이!) 하셨던 기억이 있을 만큼 지겹던 편도선. 이 나이 먹고 편도선염이 뭐야...

투덜투덜 거리면서 터미널에서 회사로 오는 길
한 때는 종교관련제품과 각종 가전을 팔던 상가 건물에 어학원이 들어섰는지
안개처럼 흩날리는 비를 피해서 어린 학생들이 상가 처마에 오밀조밀 붙어 서 있고
보도 옆 차도에는 노란 셔틀들이 줄을 서서 아이들을 태우고 갈 차비를 하고
이미 차에 탄 아이들은 핸드폰과 PSP, 닌텐도로 옆사람 얼굴은 쳐다도 안 보고 게임에만 몰두하고 있는데

그걸 보면서
늘 편도선에 걸렸던 어린 시절이라도 그 시절이
지금 저 노란 차 속에 있는 아이들보다는 훨씬 행복했던 것 같은 생각.

수요일
안개처럼 하염없이 비는 뿌리고
주책넘은 상념에 빠진 편도선염 걸린 중년의 겨울 오후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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