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언니]라는 말을 사극에서 맨 처음 접한 것은 황석영의 장길산에서였다.
지금이야 황석영씨가 정치판에 휘말려 이리저리 갈팡질팡하고 있지만, 대학시절 그의 책에서 보여주는 날것에 가까운 문체는 아직까지도 내 뇌리에 각인되어 있고, 그가 보여주었던 과거 조선민초의 삶이라는 것은
텍스트를 넘어서는 비주얼을 확실하게 그려주었다. 
난 그 당시에 [언니]라는 단어를 책으로 접하면서 무척이나 낯설면서도 정겨웠던 것을 기억한다.
더불어 수많은 사람들과 당시의 문물을 보며 작가의 자료수집이라는 것은 얼개와 설정을 만들어내는 것에 지나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은 터를 닦는 기초가 되어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내가 SF를 좋아하면서도 거기에 대해서 많은 것을 할애하지 못하는 것은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초끈이론]같은 건 고사하고 기본적인 역학/물리학의 개념조차 알지 못하잖는가. 공부라는 것은 세상 어느 것을 파고 들어간다 해도 병행되어야 한다.

오늘 TV에서 [추노]를 보았다. 삼보방포술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장길산]에서 익히 봐 왔던 내용이다. 세 걸음 걷는 속도에 맞춰서 화약을 쟁이고 철환을 넣고 심지에 불을 붙이는 일련의 동작으로 속사를 가능하게 하는 예전 조선시대 총포수들의 묘결이다. 보통  조련군사의 용법에는 일련의 과정을 다 하면 30초 가량이 소화되나 야전에서 속사를 하귀 위해 발전한 방법이다.  여하튼, 예전에도 문헌에 있던 내용인지 아니면 황석영씨가 창작해낸 것인지 지금으로써는 알 도리가 없지만 후기지수들에게 좋은 책이 주는 정보라는 것은 무엇에 비할 바가 아니다.

양서라 함은 읽으면 읽을수록 좋은 것을 계속 스스로가 깨우칠 수 있는 것을 양서라 할 것이다. 그리고 양서를 만들려면 그에 걸맞는 노력이 집대성되어야 한다. 삶에 대해서 남들보다 민감하고 예민하게 받아들인다 해서 그 사람이 쓰는 글이 모두 좋은 글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다른 삶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믿는다.좋은 칼을 만들기 위한 재료가 있을지 몰라도 담금질을 할 불과 물이 없으면 그냥 쇳덩이에 불과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만이나 세상을 오시하는 품격을 가지고 모든 것을 쉽게쉽게 처리하려 한다면 그것보다 인생에 쓸모없는 것이 있을까.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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