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원래는 우리 집안끼리만 모이기로 한 이번 추석이었는데
갑자기 모친님의 계획변경으로 이제 [마지막 추석]으로 전 가족이 모일 심산인 모양이다.
그래서 내일 아침 7시에 일어나서 부천으로...젠장. 회사다닐 때도 이런 약속은 안 잡는다고!

사실 집에서 일어나 아버지 집으로 가서 가야하는 거니 거의 4시간 정도만 자라는건데 뭐...
아, 남자들도 명절이 싫다.


2.
원래 우리 집안 계획은 아들 두놈이 모두 아내를 거느리고 나름대로 가족수가 좀 되니
우리끼리 조촐하게 지내보자는 것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집안 계획을 망쳐놓은 것은 의도치않게 내가 되었다.
다행히 제수씨가 애를 가졌으니 뭐 내년부터야 괜찮아 지려는지 모르지만...

소박한 소원이라고는 온 가족 모여서 상차리고 기도할 때
제발 날 가리켜서 [불쌍한 인생...]같은 이야기만 안 나왔으면 좋겠다는 거.

인생즉 고해라고 석가세존께서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나만 이 따위로 사는 거 아니예요.


3.
설날 이브라고 동네에 식당 연 곳이라고는 아무곳도 없어서
예전에 나를 [외국인]취급했던 음식점에 다시 가서 혼자 바에 앉아 스케이크를 썰다왔다.

울적해서 그런지 얹혔나...

이러다간 내일 아무것도 못 먹고 [불쌍한 인생...]소리나 듣고 또 집에 올지 모르는데 참 곤란하다.

오늘도 고속터미널에 들려서 사람들 구경을 하다 들어갔는데
달이 참 휘황하니 밝더라.

그 달을 믈끄러미 서서 보고 있었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내 옆에 벽안에 금발머리 친구도 같이 달을 쳐다보고 있더라.

그래, 당신나라 명절은 아니겠지만 다들 고향찾아 떠나가는 마당 한가운데 서 있으니
당신도 달을 보면 고향생각, 친지생각 나겠지.

난 원래 고향이 서울이니 혼자 개폼잡는 것이고
그 친구는 추석에 걸맞는 상념을 하고 있었을 것이라 믿으며
다시 집으로 귀환했다.

하긴, 나도 실은 이방인일지도 모르는 일이니.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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