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의 맨 처음을 객지에서 시작했던 것이
어쩌면 온전하게 내 영혼을 살찌우는 경험이었거나
잊혀지지 않는 트라우마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는 이 하나 없는 남쪽 땅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집에 올라가는 것은 두 달이나 석달에 한 번.
그리고 추석때는 올라갈 생각조차 하지 못했었고
성탄절때는 무단 상경을 해서 놀아놓고 시말서를 쓰던 시절의 기억이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타지에서 명절을 보내게 되면
뭔가 아스라히 이상한 기분이 든다.
다들 가진 게 없어도 뭔가 포근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지나가는
익히 아는 얼굴들을 보면서 뭔가 나 홀로 떨어져 사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하는 거다.
시골이니까 가끔 안집에서 먹을 것도 갖다주고 그랬었지. 인심은 살아있는 동네였으니.
그런데 정작 받아놓고 썩어문드러질 때까지 멍하니 음식대신 담배나 먹고 있던 기억이 난다.

사람이 어느 곳에 속해 있어도 그곳이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면
모든 것이 허해보인다.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의 칠정육욕을 개가 닭보듯이 쳐다보는 느낌.
그래서 조금씩 소원해지고 결국은 혼자 남아있는 듯한 기분.

밤에 고속터미널에 잠깐 나갔다 들어왔다.
끊임없이 들어오는 버스와 그 버스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그 넓은 대합실을 가득 채우고
일렁일렁거리며 움직이는데 다들 지쳐보였지만
뭔가 잠을 잘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푼 야근직원같은 표정들이었다.

아마 내가 타지에서의 발령을 마치고
있는 줄 없는 백 다 써가며 다시 서울로 올라갈 때
마지막으로 객지동료들에게 보였던 표정이 저런 것이었겠지.

사람은 그래서
자신의 둥지라고 생각되는 곳으로 날아가야 하는 법이다.
그래야 사람답게 사는 법이니까.
써 놓고 보니
내 사회경험의 처음은 트라우마도 아니고 좋은 경험도 아닌
쓸개 탄 소주같은 것이었나보다.

모두에게 좋은 추석이 되시길.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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