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실 음악감상을 좋아하긴 합니다만 기자재에 관심을 쏟는 유형이 아닌지라
(사실 기자재에 대한 정보취득이
유야무야 하다가 지난 주 첼로팬이 스피커 업어오는 거 도와주다가 낼름 첼로팬 집에 있는 것들을
데리고 와 버렸습니다. saga앰프 (SA-20).psd라면 호사를 넘어 과분일 듯. 거의 앰프다운 앰프를
사지 않았던 제게 순식간에 몇 계단 뛰어올라간 음질을 선사해 주더군요.
Carat-HD1V도 그렇고...저기에 맞추겠다고 순간 눈에 뒤집혀 사버린 젠하이저 헤드폰도 그렇고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책상이 저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요즘 저녁에 하는 일은
[레옹]에서 게리올드만이 약 먹고 어버버버하는 표정으로 헤드폰을 끼고 천장 쳐다보고 있는게 주업입니다.
2.
소원을 말해 보슈. 날 지니라고 치고...
3.
내일은 제가 좋아하는 후배의 결혼 1주년입니다.
전 그 날. 그러니까 1년 전 내일 그 자리에 가서 접수를 봤더랬습니다.
한편, 전 그 때 가정에서 내홍을 겪고 있던 때였지요.
원래는 둘이 가야 할 장소에 혼자 가서 (그것도 가장 먼저 가서)
아직 신랑 신부도 오지 않은 식장 앞 접수대에 앉아있었습니다.
왜 그렇게 아는 놈들이 많이 들어오는지...^^;;
레온까발로의 [팔리아치]에 다를 바 없었습니다.
속으로는 시꺼멓게 타들어가는데 겉으로는 이거 웃어줘야하죠.
어쩔 수 있나요. 내 결혼식도 아니고 좋아하는 후배 결혼식인데
거기서 인상 꾸기고 서 있으면 뭔놈의 결례란 말입니까.
사람들도 번잡하게 많이 왔고 접수도 늦어지고 해서
식장에는 정작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접수대 뒤로 들리는
목사님의 결혼축하 설교를 듣고 있었습니다.
정말 그 때 많은 걸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뭔가 개과천선이라던가
회개라던가 그런 유형의 깨달음이 아니었죠. 물론 그 당시에야
미칠 노릇이었습니다만...아, 삶이라는 게 이런 것이구나. 하는 느낌이랄까요.
사람이 죽을 때가 있고 살 때가 있고 이별할 때가 있고 만날 때가 있고
뿌릴때가 있고 거둘 때가 있다는 [전도서]의 말씀처럼 말이죠.
(그래서 헛되고 헛되다는 말씀으로 끝납니다만...)
마치 육신은 땅바닥에 있는데 시선은 하늘에 붕 떠서 절 내려보는 기분이 들더군요.
[어떤 것에도 집착할 이유가 없다]는 지극히 불교적인 생각이 교회에서 들었던
시점이었습니다. 물론 기독교도 마찬가지 논지가 흐르긴 합니다만.
벌써 1년이 지났습니다.
그 후배는 제가 결혼식장에서 고군분투(?)한 덕에 잘 살고 있습니다.
물론 그 녀석의 심지가 굳고 제수씨가 현명하니 그런 것이죠. 앞으로도
잘 살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잘 살 커플입니다.
1년이 지난 지금 저는 돌아보니
참 많은 일들이 접혀진 책장처럼 하나하나 포개지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그래도 엄연히 살아있고요.
오늘은 아직 하늘이 푸르네요.
내일은 비가 온다고 합니다만.
가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