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성경에서 사탄이 아담과 하와에게 한 일은
현행법상 아무런 죄가 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냥 저 선악과엔 말이지 뭐라뭐라 하는 소문이 있다대"라는 말을 퍼뜨려 놓았을 뿐이고
아담은 그말에 혹해서 자기가 제 발로 걸어가 죄를 지은 것이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사탄에게 저주를 퍼붓는다.

왜?
순수한 악의를 가지고 상대를 조종하려 했기 때문이다.
[오델로]의 이아고가 그러했고, [타이터스 앤드로니쿠스]의 아론이 그러했다.
차도살인, 자신의 손을 빌지 않고 상대방을 해치운다. 그것도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유혹자에 넘어간 죄인은 보통 두가지의 영향을 받는다.
하나는 자신의 충동을 참던 중 누군가가 그 방아쇠를 당겨주어서.
하나는 무언가 더 나은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들어와서.

누가 더 나쁜 놈인가에 대해서 현행법으로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있고
근거가 마련되지 않는 죄악도 있다.
우리는
이성뿐 아니라 감성으로도 유혹자에게
더 큰 죄가 있음을 알고 있지만 그가 교활하여 절대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면
그를 단죄할 방법 역시 없음을 알고 있다.
성문법으로는 치죄하지 못하는 그의 [분명한 죄악]에 대해서
우리는 분을 떨지만 어쩔 수 없이 무력함을 깨닫는다.
문명인이기 때문에 현대인들은 야만스러운 선택을 취한다.

우리나라는 지금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
손가락 하나 까닥하면 사람이 아래에서 쥐도새도 모르게 죽어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은 그 시절보다 미디어가 발달되어 있다는 것 외에
유혹자의 마음 씀씀이는 더욱 후안무치해지는 것 같다.

법과 언론이 발달하면, 사회적인 위치가 보장되어 있는 사람들은
겉으로 고상한 모습을 보이고 뒤에서 쓰레기를 뭉개는 행위를 해도
아무렇지도 않게 살 수 있는 세상이라는 것을 이미 온몸으로 체득했기 때문이다.

무엇이 일어나는지 뻔히 지켜보는 피해자들은
누가 무엇에 의해서 움직이는지 명확하게 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탐정 에르큘 포와로가 등장한 마지막 작품 [커튼]에 보면
황혼의 탐정이 이 범죄자를 잡기 위해 마지막으로 택한 방법은
[사적 집행과 자살]이라는 극단이었다.
이성적인 두뇌파 탐정은 자신의 탈이성만이 모든 것을 끝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아낸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옳은 방법일까.

아니, [옳은 방법일까?]라고 묻는 내 자신이 옳은 걸까?
세익스피어는
현명하기 그지없는 데우스마키나와 같은 재판관에 의해
유혹자까지도 처벌하도록 만들었지만

우리에게 있는 정의는
눈가린 창녀 외에는 없지 않은가?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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