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의 옷장을 열어보면
대부분의 옷은 같은 색이다.
검은 색.

그러고보면 검은색 외에는거의 입지 않는다.
내 외형에 잘 어울리는 색도 아니고
별로 호감가는 색도 아니다.
빨기 좋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십년 넘게 검은 색만 입지는 않았으련만
언젠가부터 난 검은 옷 입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묵빛은 침잠한다.
먹 100으로 광고를 인쇄해보면
다른 모든 색깔을 구축해버린다.
색을 타고 올라와버린다.
하나의 색이지만 묵빛은 하나의 색이 아니다.

백(白)이 초탈한 모든 것이 되어
색 자체를 날려버린 것이라면
묵(墨)은 모든 것을 삼키고 삼켜서
하나가 되어버린 색이다.
그래서 무겁다.
자신의 색은 하나도 없으면서
모든 색을 가지고 있는
한없이 내려가는 영원한 나락의 칼라.

백색은 오래 보면 눈이 멀어버리는
신의 광휘라면
묵빛은 오래보면 볼수록 빠져들어가는
인간의 아집이랄까

고상하거나 질박하다는 이유로 검은색을 입지는 않는다.
인상을 쓰고 검은색을 입으면 건달에 다름아니고
맞지 않는 곳에 들어간 검은 색은 오히려 천하다.

단지 내가 입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를 달리 설명할 수 있는 색깔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입는 것 같다.
탐욕스럽기도 하고
고상해보이고 싶기도 하고
반면에 욕심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무지렁뱅이같기도 하고
슬프고 기쁘고 감사하고 괴롭고
울고 웃고 고민하고 거칠것 없고
한번에 수시로 바뀌는 모든 것들

어쩌면 한명의개인을 어떤 색으로
표현하려는 것 자체부터가 과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하지만 정작 밖에 나가서 나를 보여 줄 때가 되면
그저 무의식중에 잡히는 것은 묵빛.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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