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시장

작은 방 한담 2009. 4. 21. 02:48

도시는 밤이 되면 사람이 나고
적막한 슬럼이 된다 식자들이 이야기하였건만
모든 곳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밤이 되도록 살아있고, 밤의 열기가 사라지기 전에 새벽의 기운을 맞으며 사람들이 오가는 곳도 분명 존재한다.

시끌벅적한 광장시장 안 오거리에는
좁은 골목길을 종횡으로 가로지르는 먹거리좌대가 줄을 지어 늘어서 있고
그 좁은 공간을 비울세라 밀려드는 손님들의 행렬도 저녁까지 분주하다.
손바닥만한 두께에 쟁반만한 빈대떡이 둥둥 뜰만큼 질펀하게 기름칠 되어 있는 철판에서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익는 중이고
 아이들 손목만한 순대가 숭덩숭덩 잘려
고단한 퇴근길을 지내고 집을 가는 사람들의 야참이 되어 입 속으로 사라진다.

질퍽하니 이미 밖은 젖어 들어오는 손님들은 손에 우산 하나씩은 들고 있는데
이미 공기중에 흥건한 기름냄새와 근처에 흔들리는 취한 얼굴들은
비단 날씨 때문에 쓸쓸해 보이는 것만은 아닐게다.

막걸리 한 잔은 노동의 보상이요, 두 잔은 친목의 확인일진대
옆 좌석에 앉은 이 누구인지 확인할 겨를 없이 그저 머리를 맞대고 젓가락질을 하니
마냥 즐겁기만 하다. 누군들 속에 담아놓은 이야깃거리 하나 없으랴.

이미 뒷나사가 하나 빠져 덜그럭거리는 밥솥과 
밥솥에 녹두를 넣는 주인 아주머니의 손길 중 누가 더 오래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예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이 둘은 여기 그대로 있으리라 사람들은 상상한다.
모듬전 하나에 육천 원이면 두 사람이 먹고도 남는데
이문은 술값이라, 주인이 챙기기 전에 손님들이 먼저 손을 들어 막걸리를 주문한다.
사람이 들고 남을 알지도 못하게 십인십색 떠드는 소리 사이로 맷돌은 신나게 돌며
녹두를 토해내고 아주머니는 쉴새없이 빈대떡을 부치고 빈 술병을 치우고
사람들은 먹고 마시며 자신들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어느샌가 한 명의 범상치 않은 행색이 먹자골목 사이 좌판을 누빈다.
왁자지껄한 손님들 뒤쪽으로 검은 실크햇에 다리에는 가죽각반이 채워진 구두를 신고
나름대로 화사한 수정박힌 단추를 뽐내는 검은 연미복의 노인은 자기 몸뚱이만한 색스폰을 꺼내
사람들을 보며 활짝 웃는다.

소양강 처녀가 늦은 밤 광장에 울려퍼지고
얼굴이 벌개진 사람들은 하나 둘 노인을 쳐다보며 노인은 소양강처녀를 끝내고 내마음별과같이를 
연이어 연주한다. 박수갈채, 그리고 누군가 노인의 손에 쥐어주는 만원짜리 한 장.
노인은 조용히 웃으며 광장 한가운데 오거리로 걸어가 자신을 보는 사람들에게
각 잡힌 거수경례를 하고 천천히 거리를 따라 사라진다.

"이 곳이 전태일 열사가 있던 곳이던가"
술자리 어름에서 귓속으로 들어오는 누군가의 심드렁한 한 마디에
두툼한 빈대떡을 잡던 손과 귀는 멈추고 눈은 주변을 둘러본다.
언제부터인가 있어왔던 작은 2층건물들은 회랑처럼 공간을 가득 채우고 그 위를 또 다른 천정이 높게
덮었는데

지금 부터 한 세대도 지나기 전에
이 위층 공장에서는 미싱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렸고
나보다 훨신 어린 아이들이 그 안에서 쉼도 없이 천조각을 잘라댔으리라.

[평화시장이었겠지]
또 다른 심드렁한 목소리.
나는 빈대떡을 먹고, 모듬전을 먹고
남아있는 막걸리 한 사발을 마시고
주섬주섬 사람들에 섞여 몸을 일으키고
내 빈자리는 곧 다른 손님들에 의해 채워진다.

비오는 4월의 서울, 청계천. 광장시장.

봄비는 밤이 깊도록 그칠 줄 모르고 내리고
나는 흘러흘러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되어버렸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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