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모르게
우리 집에 88키 야마하 키보드가 하나 들어와 있다.
한 10년은 되지않았나 싶다.

88키인지라
모든 노래를 다 치지도 못할 뿐더러
피아노 연주를 그리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거의 먼지받이로 쓰고 있는 놈이다.

피아노 연주를 좋아하긴 하지만
연주하는 걸 싫어한다고 해야 할텐데
(연주라고 하니까 무지하게 거창하구나. 그냥 친다고 해야지)

이유인즉슨,
[아무리 오랫동안 해 봐도 재능이 없음]을
우리 모친께서 6-7년이 넘은 뒤에야 인정을 하셨기 때문이다.
어머니야 금전적인 본전생각이 뼈에 사무쳤겠지만
바꿔서

그동안 내 고생이 얼마나 하늘에 닿았겠는가.
지금 샌드백을 치는 주먹으로
모차르트를 쳤다고 생각해 보라.
아,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ㅠ.ㅠ

(이거 점점 뭔가 쓸수록 내 브루주아적인 삶의 궤적이 드러나는 것이
영 못마땅하지만 어쩌랴. 지금 나는 신불자 직전이니 뭐...-.-;;;
그래, 예전엔 빵대신 케잌을 먹었어요! 내 목을 자르라고!)

...근데 뭘 쓰다가 이런 이야기로 넘어왔지?


어쨌건,
그 키보드가 아직까지 내 집에 있단 말이지.

오늘 이것저것 자료를 뒤지다가 이상한 PDF화일을 하나 받았는데
[죽은 황녀를 위한 파반느]더라는 것.
라벨의 노래구나.
이 노래 혼자 있을 때 연주하면 왠지 알딸딸하고 멜랑콜리하니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충동적으로 들었다.

그래서 프린트 하고 뽑아서 키보드에 걸어두고
정말 백만년만에 건반 앞에 앉았는데
낮은음자리표 음계에서 줄 세개 더 내려간게 뭐던가....

하여간 그냥 오른손으로만 한 30분 쳐 봤는데
맞는 음으로 주 소절 연주한 게 한번인가 그렇다.

....역시 내 유년기의 7년은 산산히 하늘에 날아간 것이었구나 ㅠ.ㅠ
하지만 낮은음자리표라는 걸 아는 게 어디냔 말이지.
샾하고 플랫을 30년이 지나도록 구분할 줄 안다.
음.
역시 어릴때 이것저것 해 봐야 해.

하루에 한 30분 정도만 [죽은 황녀를 위한 파반느]를 연습해 볼까
생각중이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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