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 나갔다가 한 두시간정도 비어서 잠시 만화방에 들려 (우후~ 여전히 변치 않는 풍경이라니) 보고 싶었던 만화를 보게 되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보고 싶었던]이 아니라 [보아야 했던, 혹은 궁금해 미치겠던]만화였다.
시구루이. (死狂い)
일본 무사들이 경전처럼 신봉했던 [하카쿠레]에 나오는 말이란다. 뭐랄까. [죽음에 대한 열정] 정도로 해석이 될까?
- 하카쿠레 : 17세기 말엽 야마모토 쓰네모토가 쓴 무사도의 정신에 대한 글. 우리나라에 번역본이 나와 있고
포레스트 휘태거가 주연한 [고스트독]에도 언급이 되는 유명한 책이다.
득도와 처세술과 무사의 신념이 똘똘 뭉친 책인데...치세에 귀감이 될 수 있는 책이나 난세에는
사람을 귀물(鬼物)로 만드는 책인 듯 하다. 2차대전 때 일본군 수장들의 정신적 모토였다는.
가장 유명한 첫 구절. "무사는 죽음을 언제나 각오하고 무사도란 죽음에 이르는 길이다"
여담으로, 버추어 파이터의 닌자 [카케]가 쓰는 무술이 [인법, 하카쿠레류]
원작자 난조 노리오가 쓴 역사물을 작가가 상상력을 극대화시켜 만든 작품인데
뭐랄까.
신체해부에 대한 지식과 내장기관과 피와 가죽에 대한 헌사라고 해야 하나.
그리고 그 속에 감춰진 인간의 추악한 욕망과 아귀같은 짐념에 대한 서술?
굉장히 잔혹하다. 데셍 자체가 잔혹함의 극대화를 가져오고 나오는 인물설정 하나하나가 악귀나찰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내러티브는 확실히 발군. 작화의 수준은 상상 이상.
보다 보면
인간세상의 모든 것이 한 줄기 날리는 들꽃만도 못하다는 생각과 함께, 인간은 껍데기 그 이상의 것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동시에 든다.
하지만 역시 이 만화 최고의 대사는 1권에 있던 대사.
"중세는 소수의 새디스트와 다수의 메저키스트들이 만들어낸 사회였다."
......이 만화는 실화를 극화한 것이라고 한다.
에도시대 도쿠가와 가문 권력실세의 도발적 충동에 의해
한 번(藩)의 최고 실력을 가진 검사22명이 불려나와
진검으로 성 안에서 11회의 1:1 진검승부를 벌였고
생존자는 딱 6명 뿐이었다고 전해진다.
그걸 모토로 쓴 것이 난조 노리오의 [쓰루가성 어전시합]
그걸 토대로 그린 것이 [시구루이]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