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복싱을 하게 된 이유는 검도 때문이다.
검도를 하게 된 이유는 경당의 18기 민족무예를 배우던 때문이었다.
맨 처음에 한국 민족무예라는 18기 경당을 배우게 되었는데 (말이 민족무예지 이거 조선후기 병졸들의 기본전투병략이다. 말하자면 총검술 연무16개동작, K-2사격및 분해 같은 일이다. 쌍수도 편곤 제독검 말이 멋있어서 그렇지 당시 알보병들의 전투병과 아닌가...생각해 보면 나도 밀리터리 오타쿠라는 이름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ㅠ.ㅠ)
문제는 내가 들어갔을 당시가 무예도보통지를 기초로 처음으로 도해를 해석하던 시기였다. 무술의 체계가 확실히 잡혀있지 않은 시점이었다는 것이다. 민족무예라는 것도 생성과 발달이 있는 것이고 발전을 거듭하다보면 고급무술의 형태를 띄게 된다. 현재 양생술과 무공으로도 가치를 인정받는 기천문같은 경우도 초창기에는 그냥 활인체조였을 가능성이 있다. 어쨌거나 시작은 그렇게 되어서 내 키만한 목검을 휘두르며 캠퍼스를 누볐는데...
문제는 그 정도 크기의 목검을 휘두르려면 근력도 근력이지만 무게중심의 이동이 확실해야 한다. 그런데 난 애초에 운동하고 담 쌓은 인간인걸 어찌하란 말인가. 일단 무게중심을 재빨리 옮길 수 있는 무술을 배워야 이걸 익힐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근접단병중에서는 그래도 최고의 실효성을 자랑하는 대한검도에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이렇게 써 놓으니까 내가 무슨 무술고수같다. 난 운동신경 지수가 제로에 한없이 수렴하는 사람이다.)
그곳에서 7년을 수련했다. 7년동안 초단땄다.
정말 끝내주는 성취율이고, 만약 이게 고시생활이었다면 때려치고도 남을만한 일이지만
그래도 좋다고 연일 계속되는 대련에서 줄창 얻어터지면서도 배웠다.
7년이면 검도 어느정도 맛을 알게 된 때였지만
그때부터 다른 고민이 시작되었다.
일단 칼은 격자길이에 들어가서 때리는 것이 중요하고 그 길이 내에서 승부가 벌어진다.
문제는 그 간격이 좁혀지는 경우. 코등이 싸움이나 일촌의 거리에서 벌이는 타격전은 그렇다 치더라도
만약 칼이 내 수중에 없다면 할 방도가 없는 것이다.
가장 원초적인 고민이 시작되었다.
어디 공사장처럼 파이프와 각목이 즐비한 동네에서 악당과 마주치지 않은 담에야
내가 매일 작대기 하나라도 들고 다녀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방 안에 3단봉 하나 정도는 가지고 다녔지만 창졸간에 어떻게 빼서 싸운단 말인가?
그리고 그런 내 고민을 더욱 심화시켜 준 건
이번 2008년의 촛불시위였다.
민중의 곰팡이새끼들이 시민들을 방패로 찍어누르는데
시민들은 우산들었다고 잡아가고 검문검색을 강화하더라는 거다.
내가 간디도 아니고, 활로를 뚫으려면 일단 뭐든지 막는거 때려 부수던가 몸 하나는 보신해야 하는데
신문지 둘둘 만 것도 잡아가는 판국에 어떻게 뭘 들고 다니란 말인가.
그래서 선택한 것이 복싱이었다.
원래 모든 무예의 처음은 백타에서 시작한다. 백타란 순수한 주먹과 발의 수련으로 권법수련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내가 이 동네에서 사학비권을 익힐수도 없는 노릇이니 가장 비슷하고 체계적인 복싱을 배워보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이제 석달 째다.
나이 서른이 중반이 넘어간 나이에 원투 스트레이트 훅 어퍼를 하고 앉아있다는 것이 참 우스운 일이다.
사람 패려고 태어난 운명도 아닌데 왜 이렇게 이런 쪽에 집착하는 걸까?
아마 운동을 하면서 중요한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몸으로 배우는 것은 성실하게 꾸준히 정확하게 가르쳐 준대로만 하면
투자한 만큼 분명히 자신에게 돌아온다. 몸은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나도 거울 보면서 섀도우복싱을 혼자 몇라운드씩 뛰는 모습이 되겠지.
누군가는 그걸 한심하게 뒤에서 지켜볼 지언정 아마 난 미친놈처럼 좋아하며 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도 나름대로 살아가는데 수련이겠지.
검도를 하게 된 이유는 경당의 18기 민족무예를 배우던 때문이었다.
맨 처음에 한국 민족무예라는 18기 경당을 배우게 되었는데 (말이 민족무예지 이거 조선후기 병졸들의 기본전투병략이다. 말하자면 총검술 연무16개동작, K-2사격및 분해 같은 일이다. 쌍수도 편곤 제독검 말이 멋있어서 그렇지 당시 알보병들의 전투병과 아닌가...생각해 보면 나도 밀리터리 오타쿠라는 이름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ㅠ.ㅠ)
문제는 내가 들어갔을 당시가 무예도보통지를 기초로 처음으로 도해를 해석하던 시기였다. 무술의 체계가 확실히 잡혀있지 않은 시점이었다는 것이다. 민족무예라는 것도 생성과 발달이 있는 것이고 발전을 거듭하다보면 고급무술의 형태를 띄게 된다. 현재 양생술과 무공으로도 가치를 인정받는 기천문같은 경우도 초창기에는 그냥 활인체조였을 가능성이 있다. 어쨌거나 시작은 그렇게 되어서 내 키만한 목검을 휘두르며 캠퍼스를 누볐는데...
문제는 그 정도 크기의 목검을 휘두르려면 근력도 근력이지만 무게중심의 이동이 확실해야 한다. 그런데 난 애초에 운동하고 담 쌓은 인간인걸 어찌하란 말인가. 일단 무게중심을 재빨리 옮길 수 있는 무술을 배워야 이걸 익힐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근접단병중에서는 그래도 최고의 실효성을 자랑하는 대한검도에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이렇게 써 놓으니까 내가 무슨 무술고수같다. 난 운동신경 지수가 제로에 한없이 수렴하는 사람이다.)
그곳에서 7년을 수련했다. 7년동안 초단땄다.
정말 끝내주는 성취율이고, 만약 이게 고시생활이었다면 때려치고도 남을만한 일이지만
그래도 좋다고 연일 계속되는 대련에서 줄창 얻어터지면서도 배웠다.
7년이면 검도 어느정도 맛을 알게 된 때였지만
그때부터 다른 고민이 시작되었다.
일단 칼은 격자길이에 들어가서 때리는 것이 중요하고 그 길이 내에서 승부가 벌어진다.
문제는 그 간격이 좁혀지는 경우. 코등이 싸움이나 일촌의 거리에서 벌이는 타격전은 그렇다 치더라도
만약 칼이 내 수중에 없다면 할 방도가 없는 것이다.
가장 원초적인 고민이 시작되었다.
어디 공사장처럼 파이프와 각목이 즐비한 동네에서 악당과 마주치지 않은 담에야
내가 매일 작대기 하나라도 들고 다녀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방 안에 3단봉 하나 정도는 가지고 다녔지만 창졸간에 어떻게 빼서 싸운단 말인가?
그리고 그런 내 고민을 더욱 심화시켜 준 건
이번 2008년의 촛불시위였다.
민중의 곰팡이새끼들이 시민들을 방패로 찍어누르는데
시민들은 우산들었다고 잡아가고 검문검색을 강화하더라는 거다.
내가 간디도 아니고, 활로를 뚫으려면 일단 뭐든지 막는거 때려 부수던가 몸 하나는 보신해야 하는데
신문지 둘둘 만 것도 잡아가는 판국에 어떻게 뭘 들고 다니란 말인가.
그래서 선택한 것이 복싱이었다.
원래 모든 무예의 처음은 백타에서 시작한다. 백타란 순수한 주먹과 발의 수련으로 권법수련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내가 이 동네에서 사학비권을 익힐수도 없는 노릇이니 가장 비슷하고 체계적인 복싱을 배워보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이제 석달 째다.
나이 서른이 중반이 넘어간 나이에 원투 스트레이트 훅 어퍼를 하고 앉아있다는 것이 참 우스운 일이다.
사람 패려고 태어난 운명도 아닌데 왜 이렇게 이런 쪽에 집착하는 걸까?
아마 운동을 하면서 중요한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몸으로 배우는 것은 성실하게 꾸준히 정확하게 가르쳐 준대로만 하면
투자한 만큼 분명히 자신에게 돌아온다. 몸은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나도 거울 보면서 섀도우복싱을 혼자 몇라운드씩 뛰는 모습이 되겠지.
누군가는 그걸 한심하게 뒤에서 지켜볼 지언정 아마 난 미친놈처럼 좋아하며 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도 나름대로 살아가는데 수련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