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개의 동공으로 난 세계를 보는데
과연 3번째 눈이라는 것은 존재하기나 하는 것인지
이 격변하는 세상에서 자신의 위치와 생각과 의견을 공고히 하면서 사는 것 자체가
죄악이 될 수도 있고 남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는 상황에서
객관적인 사태에 대한 의견피력이 가능한 것인지
전능한 3번째의 눈을 갖지 않고서도 그게 인간으로써 가능한 지경인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3번째 눈이 100%관조적이라고 3자에게
설명이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인지.
어느 작가의 말에 따르면
[지식인]이라 지칭함은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않는 것이 아닌
한쪽의 가치를 위해 행동하는 것이라 하였는데
과연 그것이 [중립성을 보장받는 타자의 입장에서 객관성을 지니는 것]을
궁극의 시작점으로 여기는 현재의 [지식인]들에게도 통용되는 것인지.
이도저도 아니면 그저 도연명처럼
협기에 따라 행동하고 나중에 자연으로 도피하는 삶의 양식이
맞는 것인지.
불편부당함을 꿈꾸지만 인간의 한계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딜레마라.
아직까지도 잘 알 수 없는.
그러나 그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지극히 인간적인 딜레마.
과연 3번째 눈이라는 것은 존재하기나 하는 것인지
이 격변하는 세상에서 자신의 위치와 생각과 의견을 공고히 하면서 사는 것 자체가
죄악이 될 수도 있고 남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는 상황에서
객관적인 사태에 대한 의견피력이 가능한 것인지
전능한 3번째의 눈을 갖지 않고서도 그게 인간으로써 가능한 지경인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3번째 눈이 100%관조적이라고 3자에게
설명이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인지.
어느 작가의 말에 따르면
[지식인]이라 지칭함은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않는 것이 아닌
한쪽의 가치를 위해 행동하는 것이라 하였는데
과연 그것이 [중립성을 보장받는 타자의 입장에서 객관성을 지니는 것]을
궁극의 시작점으로 여기는 현재의 [지식인]들에게도 통용되는 것인지.
이도저도 아니면 그저 도연명처럼
협기에 따라 행동하고 나중에 자연으로 도피하는 삶의 양식이
맞는 것인지.
불편부당함을 꿈꾸지만 인간의 한계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딜레마라.
아직까지도 잘 알 수 없는.
그러나 그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지극히 인간적인 딜레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