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후배가 통째로 물려준 에이브88권을 읽는게 밤의 행사처럼 되어버렸다.

우리나라 출판사들의 지금 처지나
밤을 새서 독서를 해도 모자랄 연령대의 학생들이
공부기계가 되어가는 이 마당에
아마 에이브88권은 다시 이 나라에 나오지 못할 책들일 것이다.
(이 책을 만든 학원출판공사 역시 망한 지 오래다)

예전에 내가 이 책을 소유하고 있을 적에
88권을 다 보지 않았더랬다.
맘에 드는 책들만 뽑아서 봤다.
거친 뱃사람들의 모험담, 바이킹의 시대, 몰락해가는 로마의 이야기등등
주로 고대 역사물이었던 듯 하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한권한권 뽑아서 읽다보니
늘어난 것은 참을성이요 줄어든 것은 감동이라 생각했지만
아직까지도 수많은 글자들이 가슴을 먹먹해지게 만들더라.

[검은램프]라는 소설이 그 중 하나였다.
우리에게는 세계사 시간에 한 줄로 끝나는 [러다이트운동]을 소재로 한 소설.
왜 수직공들이 기계를 때려부숴야 했는가

세계사 시간에는 단지 한줄이었지만
이 책을 보면 그들이 원했던 것은 [시민으로써 선거권을 쟁취하고 국민으로써 대접을 받기 위해]라는
사건의 기저에 깔린 당시의 시대상이 나온다.

책을 읽다 보니 가슴이 칼로 도려내는 듯 아프다. 
좋은 책, 좋은 영화, 좋은 만화는
시대를 반영하고 시대의 거울이 된다.

별반 산업혁명기의 정치구조와 다를 바 없는
대한민국 21세기를 사는 소시민의 한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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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내가 어렸을 적에 [검은 램프]를 읽었다면 무슨 소리인지 몰랐을지도 모른다.
지금 봐도 책의 격이 떨어지지 않는다. 무려 20여년의 시간이 흘렀어도.

책은 인터넷의 텍스트와 확실히 다르다.
서적의 질감과 활자의 시감과 함께 작은 종이에 쓰여진 텍스트의 무게라는 것은
이상하지만 같은 글자를 모니터에 띄어놓고 보는 것과 천양지차를 갖는다.

좋은 책을 접하고 읽고 쓰고 느끼고 배우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믿는다.

읽지 않고 듣지 않고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눈을 돌릴 때 사람은 세상이 끄는대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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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보는 게 새삼 즐거우니 이것도 삶의 도락이다.
아마 최고의 도락 중 하나가 아닐까 싶지만.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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