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밥

수련장 2009. 1. 9. 20:47

기약없는 약속을 잡고 있던 금요일
원래 기약없는 약속이라는 것에는 가능성을 부여하지 않는 법.
식사시간을 19시15분으로 잡아놓고 있었다.
19시 15분이 지난 뒤 바로 식사환경으로 돌입,
뭘 먹을까 10초 정도 고민하다 메뉴를 결정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러하지 말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지만
민생고를 벗어나지 못하는 범인에게는
너무도 어려운 말씀 아닌가.


(그냥 뚝딱 준비한 집에서 먼지쓰고 있던 재료들)

쉽게 만들어 먹기로는 주먹밥만한 것이 없다.

재료라.
햇반이 있으니 밥은 있고
참기름도 있으니 두 개만으로도 가능하다.

거기에 참치캔이라면 호사요
후리카케까지 넣는다면 나름대로 허영 아니겠는가.


(살짝 딴 뒤 기름을 모두 빼버리고 살코기만 놓았으니)

일단 햇반을 돌리고 참치를 준비한 후
후리카케를 이것저것 고르다 타마고(たまご: 알)와 노리(のり:김)을 꺼냈다.


(아무리봐도 나와 전혀 안 어울리는 헬로키티 후리카케...)

그리고 참기름과 햇반과 참치와 함께 솥에 던져넣었으니


아마 지구상의 어떤 견공(犬)은 저 재료들보다 훨씬 호사한 것을 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구상 어느 가족에게는 저게 한달 치 식량일지도 모른다.

음식은 신성하다.

여기에 조금의 호사까지 더해서

미소장국까지 만들기로 했다.

주먹밥, 별거 있나.
한국음식중 가장 간단하고 사연많은 음식 아닌가.
두 손으로 누르고 눌러서 조그많게 뭉쳐질 때까지 눌러서
한 손에 넣고 먹을 수 있으면 그만이지만

주먹밥이라는 거, 묘한 것이다.
손아귀에 동그란 밥이 잡히면
음식에 감정이 부여된다.
어떨 때는 울컥하고, 어떨 때는 감사하고
어떨 때는 세상만사가 부질없어뵈기도 한다.


(이런 주먹밥이라면 그냥 허영 아닌가.)

(거기에 국까지 먹는데 풍성하지 않은가)



간단한 식사,
가상다반.
평상심시도.
뭐라고 부르던 말은 많을 것이다만

내게는 그냥 감사한 저녁이고 기준을 바꾸면 호사스럽기 그지없다.

[엄마가 지은 밥]이라는 건 구라같지만
어쨌건 하늘과 통해서 농부가 만든 쌀이 있고
머나먼 대양에서 잡아온 생선이 있고
누군가 바닷가에서 한 철을 말려 들어간 김이 있다.

남길 수 없는 것이다.


내일도
오늘처럼
감사하며 먹고 살기를.


2009년은 작년보다 더 질박한 가운데서
보다 많이 고마워 하는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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