知心

수련장 2008. 12. 10. 00:19
내가 내 마음을 모르는데 타인의 마음 속을 어떻게 들여본단 말인가.
세상에 퍼진 책 중 [독심술]이라는 것에 대해서 나는 늘 의문을 갖곤 한다.
과연 타인의 마음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그것이 학문처럼 정형화 될 수 있는 부분인가. 마음이라 함은 살아있는 생물과 같이 한 곳에 일정히 머무르지 아니하고 천변만화하는 것과 같은데 그것을 어찌 계량화하고 측정할 수 있는 것인지. 하지만 또한 지속적으로 책이 나오는 것을 보니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알아본다는 것은 참으로 매력적인 일인 모양이다.

멜깁슨이 나왔던 [왓 위민 원트]에 보면 어쩌다 여성의 마음을 읽게 된 광고업자가 (이 자식, 광고쟁이라니) 아주 희희낙락하게 사람들을 갖고 노는 장면이 나오는데 (솔직히 갖고 논거다. 결국은 해피엔딩 아닌가) 그런 장면 조차도 어찌 보면 마초스러운 이야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일순간에 사람의 마음을 알아서 쥐었다 폈다 하다가 자기 원하는데로 사람들을 이끌고 맘에 드는 여자하고도 자고 어쩌구 하다 나중에 좀 징징 짜고 해피엔딩.
될 법한 소리냐?

사람의 마음을 아는 것은 무조건 시간이다. 그게 기본이다. 그리고 무욕(無慾)이다.
시간을 아무리 들여도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없다면 그것은 자신이 보고 싶은 방향으로 그 사람을 보기 때문이며, 그 안에서 행동하고 판단하고 재고 자르고 씩둑깍둑하다가 그냥 혼자 쓰레기통에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을 내팽개치는 거다. 정작 그 사람은 나에게 해꼬지를 하지도 않았는데 그냥 보기 싫고 짜증나고 피하고 싶고 마주치기 싫고 미워 죽겠다면 누가 문제인 것인가? 마음속의 나에게 힐난을 퍼부어야 되지 않겠는가.

개인적으로는 사랑보다는 우정이고 애정보다는 신의를 우선한다. 댓가를 바라지 않음이 그 첫째요. 항상 볼 필요가 없어도 마음이 변치 않음이 그 두번째요, 마지막은 내가 무욕으로 대하니 그 사람의 마음을 더 진실하게 읽을 수 있음이 세번째다. 어느 날 과거의 언제인가 사랑에 취해서 이리저리 방황하다 집으로 돌아오니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사랑하던 연인이 아니라 코찔찔이 고등학교 동창들이거나 동네 선후배였다는 것을 알게 될 때의 면구스러움이라는 것은 뭐라 말로 형용할 수 없다.

사람이 늙으면 정으로 버틴다 했건만 또 하나 잡자면 우정으로 버티는 것 아닌가 싶다. 부부도 오래 되면 친구가 되고, 말을 하지 않아도 알게 되는 사이가 되는 것은 신의에 의한 욕망의 벗어던짐이 아닐까. 그래서 결국 끝까지 남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신뢰와 우정인 것이 아닐까.
 
가끔 건너편 도로에 서 있는 친구를 보면서 손을 들면서 웃으면 그 친구도 나를 보면서 웃는 경험을 한다.
"거지같은 놈 왜 웃고 지랄이야"라고 생각하면서 손을 흔드는 이 아무도 없듯이 내 인생도 그런 순간의 경험으로 충일하게 나머지가 꽉 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 나이에 필요한 것은 끝까지 같이 가 줄 친구 아닌가 싶다.
솔직히 지금은 외롭지만 내가 찾는 건은 짝 잃은 외기러기가 아닌 듯 하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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