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해서, 대한민국 성인 직장인들의 유희라는 것은 술 아니면 여자외엔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개인이 가지고 있는 취미와 여가시간의 활용은 수많은 것들로 분화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사회구조에서 원하는 성인의 유희라는 것은 전술한 두가지외에는 통용되지 않는다.
산업사회가 분화되고 개인주의를 반영한다고 하지만, 엄연하고 냉정한 사실이다. 사업관계라는 것은 공적인 연결고리 외에 다른 것으로 인해 움직이기 마련이며, 1차원적인 친분관계를 유지하고 그것으로 인해 현실적인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보다 끈끈한 관계를 구축하고자 하는 것이 자본주의 산하의 인간속성이다. 한국은 이것이 술과 여자로 특화되어 있다. 물론, 대부분은 술이다.
벌써 20년여년 전의 일이지만, 나는 술을 정말 먹기 싫어했다. 지금도 싫어한다. 불쾌한 몽롱함이 이성 앞에 장막을 치는 것도 싫거니와, 다음 날 숙취라는 묘한 고통으로 자신의 몸을 괴롭히는 가학적 성향도 굉장히 기분나빠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술을 먹고 친해진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끔찍하다. 나와 가장 관계가 깊은 친구들은 이미 20여년 전 술이 없이도 만난 상대려니와, 지금까지도 술과는 관계가 없는 끈끈한 우정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봐도 그것은 자명하다. (물론 술을 먹고 관계가 돈독해지는 사람도 있지만서도...매일 먹지는 않잖은가.)
대한민국 사회는 술을 먹고 연극을 한다.
취하지도 않았지만 취한 상태에서도 사람들 앞에 본심을 내밀지 않는다. 정확하게 계산된 말을 술김에 내뱉는 것 뿐이다. 그걸 못하는 사람은 주정뱅이에 불과할 뿐이다.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인식한다. 단지 술을 먹으면 조금 더 자신에게 유리한 말을 할 수 있다는(술김에 라는 방패를 두르고) 잇점 때문에 술을 먹는 것뿐이다. 이걸 누가 모를까. 술을 먹지 않는 사람도 술을 먹는 사람만큼 아는 세상에서.
한 시절, 사회 초년 병일 때 맥주를 주는 상관하고 멱살잡이를 하던 인간이 어느 새 아랫사람들에게 소주잔을 나눠주는 위치에 올라섰다. 어지간하면 마시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은 내 윗선의 사람에 의해 눈치를 보는 형편으로 바뀌었다. 술냄새만 맡아도 토악질을 하던 인간이 소주2병은 먹는 인간으로 바뀌었다. 슬슬 빼고 들어갈 때를 알게 되었고 다음 날 어떻게 하면 정신을 차리는 지 요령도 생기게 되었다. 사회생활에 요령이 생긴 것이라고 볼 만 하다.
하지만 내가 가끔 거울에 비친 나를 보면서 쓴웃음을 짓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술을 못 먹어서 고생하고 자신의 이상과 삶의 뒤틀림 사이에서 알콜이라는 되도않는 요물때문에 좌절하는 수많은 청춘들을 보고 있자면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언제쯤 이 나라는 술을 안 먹고 일할 수 있는 나라가 될까 싶은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지만 동시네 '저렇게 해서 어떻게 사회생활을 하나'하는 되먹잖은 어른의 딱딱해진 대가리가 그 가운데로 불쑥 들이미는 것을 느낀다. 이게 나이를 먹고 꼰대가 되어가는 과정일 것이다. 철이 든다는 것은 어찌보면 획일화를 통한 같은 집단의 확장에 목마른 상태를 뜻하는 말이 아닐까.
그냥 심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