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만 커져서

투덜투덜 2011. 12. 2. 01:44
예전에는 세상살이가 힘들지 않았다.

삶의 호오를 흑백으로 구분지어 산다는 것이 지금은 지적으로 모자란 사람들의 행태같지만, 몇 십년전, 아니 십수년전만해도 가능한 일이었다. 악당은 악당이었다. 사람들을 괴롭히면 악당이었고, 혼자 잘먹고 잘살고 다른 이들 거 뺏아먹으면 악당이었고,  부족한 사람들 핍박하면 악당이었다.

옳음에 대한 정의는 거칠지만 간단명료했다. 분명 그렇게 된 배경에는 악당들의 세련되지 못한 자기표현이 존재했다. 아무리 잘 봐줘도 못된 짓을 했다. 멀쩡한 학생 패죽이고, 돈 뜯고, 말 안들으면 갖다 거짓재판하고 고문했다. 악당스러움이라는 것이 확연했기에 옳음이 빛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시대가 변했다. 악함이라는 것에 명분이라는 조미료를 치고, 그곳에 질서라는 조미료를 치고, 대의명분이라는 것을 입혔다. 까뒤집어보면 똥인데, 그 포장지를 휘황찬란하고 먹음직 스러운 장식을 해 놓고 당당하게 먹거리라고 팔아댄다.

그 포장지를 보면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이걸 봐. 너희들도 쓰는 포장지야. 이 향기를 맡아 봐, 너희들이 쓰는 조미료야. 이 색깔을 보렴, 예전에 너희들이 그렇게 찾아 헤메던 색깔 아니냐. 시대가 바뀌었잖아. 이젠 이런 것들도 감내하며 같이 갈 줄을 알아야 해.

흑백논리가 좋지 않다는 것에 동감한다고 치자. 하지만 그렇다고 겉만 바꾼 불량품을 그동안 줄기차게 싸워왔던 대다수 사람들에게 정성껏 권하는 시대가 과연 제대로 된 사회인지 나는 의심스럽다. 세상은 선악의 구분이 모호하지만 최소한 똥을 밥이라고 먹이는 시대를 제대로 된 시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팔다리는 오그라든 주제에 머리만 커진 시대.
솔직히 경멸스럽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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