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건강

살빠졌다. 최근 몇년 동안 이렇게 살 빠진 적이 없고 이렇게 날씬했던 적이 없다. 최소한 먹자마자 화장실로 뛰어가는 일도 사라졌다. 외배엽은 몰라도 내배엽은 건강을 되찾아가는 것 같다. 운동한다. 운동할 시간이 있다.  남들은 꿈도 꾸지 못하는 일이다.



2. 주거

놀고 먹어도 집이 있다. 이거, 대한민국에서 이만한 메리트는 없다. 솔직히 10년은 더 놀고 먹어도 타인보다 뒤쳐지는 삶은 아닌 것이다. 내가 이룬 것이아니라 거의 하늘에서 떨어진 은총이다. 이건 정말 감사해야한다. 그냥 이 두가지만이라도 나름대로 난 행복하다고 느끼면서 살아야 한다. 소소한 불만따위 말하면 벼락맞아 죽을 것이다.



3. 이상형

사내로 태어나서 자기가 꿈꾸던 이상형하고 말도 걸어봤고 밥도 먹어봤고 몇 년간 줄기차게 봐 왔다. 이젠 보기 요원하지만 하여간 그런 시절도 있었다. 이상형은 만나지 못하는 법이지만 하여간 나는 만났다. 꿈길처럼 현실을 살아봤다. 그럼 된 거 아냐? 그 여자가 나를 좋아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이건 나 자신의 미적 기준이 실체화되었다는 일종의 정서충족이었다. 아사코와 나는 세번 만나서 마지막은 만나지 말걸 그랬다는 피천득 선생님의 말도 있었지만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으면 좋은 거 아닌가. 



4. 사람
모진 놈 옆에 있다가 미친놈 만나서 벼락도 맞아보고 탈모도 진행되고 그랬지만 그래도 좋은 사람들은 꾸준히 남아있었다. 그나마 허접한 인연이었으니 월하노인이 묶어준 끈도 저절로 풀어진 것이지. 좀 더 나이먹었으면 정말 끔찍한 일을 겪었을 것이다. 그걸 제하고는 주변에 사람들은 참 좋구나.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이나 이젠 사람들 보는 눈이 활짝 뜨여서 좋은 사람은 끝까지 보듬고, 아닌 사람은 대차게 잘라버릴 수 있는 식견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것저것 소소한 건 많은데
오늘은 이 정도로만 생각해 봐야겠구나.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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