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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10 guild에 대한 단상 11
아침이 지나 점심이 다 되도록 동료가 출근을 하지 않는다.
전화를 걸어보니 거래처에서 계속 전화가 걸려와 출근을 못하는 상황이란다.
집에서 전화받다 하루가 끝날 것 같다는데, 그러라 하였다.

전화내용을 이야기해주는데 목소리가 별반 좋지 않다.
아마도 누차 이야기했던 [단가]의 문제일 것이다.
원래 갑(甲)의 입장에서 을(乙)의 단가를 깎는 것은
대한민국 기준에서는
죄도 아니고 낯 붉힐 일도 아니고 도덕적 기준에 어긋나는 것도 아니니
별다를 것 없겠다만
이번에는 그게 아니라 동종업계 쪽,
그러니까 경쟁자 쪽에서 가격으로 걸고 들어오는 모양이더라.

"우리가 이문을 많이 남기는 것도 아니고 그 정도면 말 그대로 호구지책 정도의 마진인데
 그 쪽은 무슨 심정으로 동귀어진(同歸於塵)하자는 말인가?"

"처음 들어가는 거니 출혈을 감수하겠다는 것인가 봅니다."

"처음부터 깎고 들어가는 단가면 나중에 갑(甲)이 그 단가 이상을 주지 않음을 모르는가? 괴이하다"

"아직 정확한 내용을 모르니 뭐라 말할 도리가 없습니다."

대충 이 정도였다.

전화를 끊고 사무실에 앉아 생각하니 참으로 한탄할 노릇이다.
이루지 못할 것이 없는 대기업이라면야 몇 번의 작은 건에 있어서 이문을 내지 않는 사업을 벌인다 해도
창해일속과 같이 표시가 나지도 않을 뿐 아니라 기업에 좋은 이미지도 주겠다만
한번의 거래에 목 위에서 칼날이 오가는 중소기업들이 더 심하고 박하게 자기 이문을 내팽개치는 형국이란
이해가 안 가는 거래상황 아닌가.

아무리 자본주의가 좋다 하지만 푼돈에 기(技)를 팔아먹어서야 저자판에 광대밖에 더 될 손가.
천하 최고의 살판잡이라 치자.
장이 파하면 어딜 갈 것이며, 날이 궃으면 어떻게 호구지책을 마련할 것인가?

그래서 서양에서는 Guild가 있었던 것이고
Guild가 발달해서 노조가 된 것이다.
과유불급이라고, 배타적이고 자신의 보신에 급급해서 세상돌아가는 것과 상관없이 치산치부하는 노조라면야
없는 것이 마땅하지만

최소한 한 직종에서 서로 자존심을 뭉개며 이전투구를 하는 짓은 말릴 수 있는 기구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디자인이라는 직종이 그러하다.
날을 새고 밤을 새서 몸으로 배우고
아무리 tool이 좋아도 경험과 숙련이 바탕되지 않으면 원하는 Output을 뽑아내지 못하더라.
이것은 사람이 중심이 되는 인건비중심의 산업이라면 대부분 그럴 것이다.

문제는 
대한민국에서는 거의 새벽 인력시장만큼이나 많은 직업종사자가 있고
이들을 사용하는 사용자는 헐값에 부릴 수 있다는 마인드가 깔려 있다.
인건비중심의 사업이 오히려 인건비도 못 뽑는 가혹한 시장상황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 나는 guild를 꿈꾸고,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감을 하면서도
그렇게 되면 갑(甲)들은 분명 guild를 부숴버릴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아마도 그렇겠지.

왕후장상과 싸워서 길드를 세운 상인혼 따위를 유럽이 아닌 대한민국에서 바라는 것도 무리일테고
자신이 가진 기예와 기술이 돈 몇푼에 나뒹굴바엔 판을 깨버릴만한 장인혼도 사치인 시대가 되어버렸고
조금만 모여서 이야기하려고 치면 소화기 최루액 플라스틱방패부터 돌멩이까지 나라가 던져대는 시국에
뭔 이야기를 더 하리오만.

그냥 좀 허하고 답답할 뿐인데
날씨는 왜 이리 좋누.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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