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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2.30 김근태 선생 별세. 2

세한 - 소강절((邵康節)


松栢入冬靑송백입동청(소나무와 잣나무는 겨울이 되면 더욱 푸르니)

方能見歲寒방능견세한(바야흐로 한겨울임을 알 수 있구나)

聲須風裏靑성수풍리청(소리는 바람 속에서 더 잘 들리고)

色更雪中看색경설중간(색깔은 눈속에서 더욱 더 잘 보이는 법이다.)


1.
김영삼 정권시절 일이다. 민주화 재야인사들이 막 복권되던 시기였다.
그 때, 우리 학교에 특강을 하러 오신 양반이 한 분 계셨다. 겨울이었던가. 허름한 코트에 약간 기우뚱한 몸짓으로 단상에 올라와 어눌한 어투로 강연을 하신 분이었다. 김근태 선생에 대한 내 첫 기억이다. 누구인지 나는 잘 몰랐다. 그저 재야인사 중 하나라는 생각 뿐이었다. 하지만 그 날이지난 뒤 몇몇 서적과 신문을 통해 김근태라는 사람와 인생과 그 인생에 맞물려 있는 현대사. 그리고 그가 당한 탄압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2, 
나는 김근태 선생을 두번째로 국회에서 만났다. 어쩌다가 인연이 닿아서 국회의원 사무실에서 잠시 사무를 보던 때,
수수하기 그지없는 김근태 선생 비서하고 마주칠 일이 종종 생기곤 하였다. 사회 초년생이 된 내가 가금 농 삼아
물어보곤 했다. 선생님은 월급받으시면 뭐에 쓰시냐고. 비서관은 웃으면서 말하곤 했다.
"그동안 워낙 신세지신 분들이 많아서 그 쪽으로 다 들어간다"고.
내 기억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으니 이 부분에 대해서는 뭐라고 할 도리가 없다. 하여간 당시에도 암암리에 유명했다. 국회의원 세비 받아서 20년간 운동하면서 뒷바라지 한 사람들 빚갚느라 정신 없으시다는 말을 들었으니. 
가끔 의원회관에서 보는 얼굴은 학창시절 뵙던 얼굴하고 다를 바가 없었다. 늘 사람들에게 꾸벅꾸벅 인사하고 다니는
그냥 순둥이같은 아저씨. 

저런 사람이 어떻게 대공분실에서 20일간 사람이 이겨내지 못할 고문을 당하고 한 마디도 불지 않고
평생을 이겨내지 못할 고문 후유증까지 가졌으면서도 저렇게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위해 살아갈 수 있을까.

선비로구나. 저게 선비로구나.

3.
오늘 아침, 결국 고문의 후유증으로인한 뇌질환으로
따님의 결혼식도 보지못하고 누워계시다 결국 소천하셨다는 소식을 접하였다.
살면서 자신의 신념을 위해 살아가는 정치인은 많지만, 그를 위해 자신의 육신을 버리고
그 이후에 [복수]의 신념이 아니라 화합을 위해 살아온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은 정치인인가 종교인인가.

시대가 요구하지 않았다면  험한 여정을 골라 가지 않아도 될 법한 사람들이
끝까지 북풍한설을 맞아가며 푸른 빛을 뽐내는 것을 보면 
그의 주장하는 바를 떠나서 경외감과 존경을 느낀다.
하물며, 그 이후의 삶이 정도를 벗어나지 아니하고 평생 올곧았다면야 더 이상 말 해 무엇하리.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제가 인터넷에서 자유롭게 글을 쓰게 해 주신 수 많은 선배님들중의 한 분.
전 솔직히 선생님이 대통령이 되시는 그 날을 기다렸습니다만
제가 원하는 날은 이제 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유일하게 사랑했고, 존경했던 대한민국의 정치인.

선비 김근태.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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