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들 하십니까


전후시절, 50-60년대 살아가던 내 아버지 시대의 사람들은 인사가 이러하였습니다. 밥은 먹었습니까.

그 뒤 군사 쿠데타와 군사정권을 살아왔던 내 윗 시절의 사람들 인사는 이러하였습니다. 밤 새 안녕하셨습니까


민생고의 핍절함으로 인해 생존의 여부가 달렸던 시대에 밥을 먹었느냐는 말은 말 그대로 잘 살아 하룻밤을 넘길 만큼 건강하냐는 이야기였고, 억압과 폭거의 시대에 둥글게 살아가지 않으면 자신의 안위가 어떻게 될 지 모르던 시대에 밤을 잘 넘겼냐는 말은 그만큼 처신을 잘 했냐는 말이었습니다. 결국 이 인사는 개인의 실존과 관련됩니다. 의식주의 한계와 사상의 자유 속에서 우리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계속 지키면서 살 수 있었냐는 인사입니다.

밥은 먹었습니까.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그리고 2013년 겨울, 우리는 다시금 묻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밥을 굶지 않습니다. 영장없이 들어와서 사람을 잡아가는 시대도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금 안녕하냐고 묻습니다. 무엇때문에 우리는 개인의 안녕을, 실존을 묻는 발언은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는 것입니까? 그것도 한 개인이 허공에 대고 쓰다시피 한 대자보에 호응하여 전국 각지에서 봇물 터지듯 하늘에 대고 외치는 이 물음은 과연 무엇입니까?


이것은 말 그대로 평안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내 실존의 개체와 주위의 환경이 맞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동안 50년대부터 줄기차게 저항하여 왔던 민중들의 승리로 인하여 여기까지 올라 온 우리들의 자존심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가 갑자기 도래한 것에 대한 공포입니다. 경제적인 성과와 민주적인 성취를 통해 올라 선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자긍심이 어느 순간 모두 허물어지는 순간에 우리는 처해있습니다. 가계는 부채를 견디지 못하고, 고용은 살얼음보다 얇은 두께로 겨우 지탱되며, 나라의 성장은 위기에 처해있고, 기간산업은 되도않는 모습으로 외국의 자본과 재벌 앞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선배들이 피와 죽음으로 만들어 낸 민주화는 어느 순간 그들을 뒤에서 방관하고 저주했던 노추들의 집권으로 인해 모든 것이 역행되며, 사람의 말과 행동의 자유를 이념과 사상으로 옭아 매고 자신과 뜻이 다른 이들을 사상위반으로 몰아대고 있습니다. 공공재는 효율이라는 이름하에 민영화라는 이름으로 잘려서 판매되고,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얻어진 민주화라는 단어는 철없는 홍위병들의 선동아래 광대의 춤사위가 되었습니다. 지역감정은 살아나고 힘없는 자는 밥 한끼를 위해 자존심을 팔아가며, 예술가들은 입을 막히고 눈을 가리우며 펜대를 쥔 자들은 자신의 밥그릇을 위해 잉크에 독을 묻혀가며 사람들의 머릿속을 찔러댑니다.


이것은 모든 세대가 걸쳐 아침에 이웃과 나누었던 모든 안위의 말을 종합한 것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당신은 대한민국에서 인간으로 대접받고 있습니까?

당신의 자식은 대한민국에서 인간으로 대접받을 수 있을까요?

당신은 당신의 아버지와 선배들이 노력한 결과물 아래에서 더 나은 삶의 질을 영위하고 있습니까?

대한민국은 역사의 수레바퀴가 굴러가는 만큼 발전하고 있습니까?


안녕하십니까?



아니오.

우리는 안녕하지 못합니다.


Posted by 荊軻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