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브란스 초대 졸업자중 한 사람이자 의사 독립운동가로 유명한 김필순선생의 일화중에 이런 것이 있다.

을사조약이 나고 한국군대가 해체된 날이었단다.
나라잃은 군대가 되자 시위대장 박승환이 자결하고, 한국군은 격분하여 일본군들과 시가전을 벌였는데
중과부적, 모든 것이 부족한 한국군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제중원으로 부상병을 실어나른 김필순이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었는데
천지사방 난리통인지라 도와줄 손길이 너무 부족한 것이었다. 그래서 김필순은 자기 집으로 가서
자기 여동생들더러 부상병을 간호하라고 시킨다. 어머니가 과년한 처녀들을 어디로 끌고가냐고 했는데
결국 집안 처자들을 다 데리고 나와서 시위대 부상병들을 간호하고 치료하는데 돕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 날 이후, 가족 전체가 확 바뀌는데
김필순 일가는 대부분이 항일 독립운동을 하는데 뛰어든다.
여동생중에는 김마리아도 있었고, 일본에서 항일운동을 계획하던 김필례도 있었다.

조선의 귀족작위를 받았던 동농 김가진 선생도 일가친척을 다 이끌고 상해로 옮겨간 뒤
집안 전체가 항일운동을 하는데 힘썼다. 유명한 정정화선생은 김가진 선생의 맏며느리다. 집안의 맏며느리가
일제치하 조선에 자금조달을 위하여 몇 번을  사선을 넘나들며 왕복을 했다.  장남은 임시정부에서 일하고
차남은 광복군에 뛰어들고 며느리는 밀사노릇을 하고 자신도 임시정부에서 일하다가 상해에서 유명을 다했으니
집안도 이런 집안이 참 드문거다. 정정화선생은 김가진 선생의 말을 절대 거역하지 못했단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꼬락서니 보면
확실히 집안 내력이라는 거 무시 못하겠더라.
집안 위의 좌장이 제대로 서 있으면 삼시세끼 굶어도 낙락장송같은 후손들이 나오고
아무리 잘 먹고 잘 살아도 하는 짓이 쥐무리에 지나지 않는다면
자식들도 딱 그대로 닮아서 못난짓만 베끼고 살게 되더라.

그냥 우리끼리 잘 먹고 잘 살자는 놈들은 비루먹은 놈들의 후손임을 안 봐도 알겠더라.
그래놓고 자식새끼 공부는 죽어도 시켜서 당상에 올라 나라를 쥐락펴락하게 만들고 싶다는 것들은
천하에 금수만도 못한 역적도당 무리의 씨앗 외엔 아무것도 아니더라.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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