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역시 이 분을 못 잊지만
난 노란색 티셔츠를 입고 다니던 사람도 아니고
이 양반 이야기 나올 때마다 우는 사람도 아니고
하물며 이 사람을 찍은 적도 없지만
겨우 1년이 지났는데 이미 먼 과거의 사람처럼 느껴지는 현 상황과 나라는 사람의 작태가 그저 씁쓸하기만 하다.
하긴, 친부모가 죽어도 6개월이 지나면 웃을 수 있는 것이 사람이라는 동물,
망각이라는 것이 없다면 사람은 견뎌내지 못할 종류의 생물이긴 하지만
한 개인의 죽음이라는 것으로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난 이분이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
지극히 당연한 역사의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인간과 인간에 대한 존중과 예의]가 민주주의의 기본이라면
뭔가 좀 모자란 듯 해 보여도 여기서부터 차츰차츰 발전해 가는 것이
순리가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1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니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였다.
우리는 여전히 중세의 농노이고
대통령은 [王]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직함일 뿐이고
대통령은 하늘이 내리는 것이고
하늘의 명을 따라 천명으로 알고 살아가는 나라에서
헛된 꿈을 꾸고 있었다는 것만을 뼈저리게 느끼며 살아간다.
오늘 먹을 쌀을 위해 자식들을 부자에게 노리개감으로 팔았던
조선시대 노비나
오늘 요족할 욕심을 위해 내 후대를 팔아먹는 우리나 뭐가 다르랴.
난 몇 년 전에 이렇게 생각했었다.
노무현보다는 김근태가 민주주의의 이상에서 봤을 때는 대통령에 낫지 않느냐
군사정권의 이빨과 발톱에 찢겼다가 다시 살아난 인물이
철학자에 가까운 시선과 결벽증에 가까운 도덕률로 민주주의를 이행하는 것이
그동안 움트기 시작한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는데 적격이 아니냐.
아니었다. 개꿈이었다.
나름대로 훨씬 현실적이고 합리적이고, 싸울 때 싸울 줄 알았던 그 이도
제 밥그릇 지키는 욕망의 거대집단앞에서 싸늘하게 시체로 변해버리는 곳이
대한민국이더라. 김근태가 대통령이 되었다면 아마 1년도 못되어 죽었을것이다.
내가 꾼 것은 유러피안 드림이었을지도 모른다.
노조위원장이 대통령이 되는 나라들이 존재하는,
사람들이 사람을 대할 때 경계를 하지 않고 말할 수 있는 나라라는 것은
착각이었을 것이다. 백일몽이었을 것이다.
노무현이 우리에게 과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우리 생각보다 훨씬 저열하고 겁많은 부류였을 뿐이다.
쥐새끼들의 두목은 쥐새끼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