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제정된 어린이 헌장을 지금 다시 읽어보자. [떡배단배]의 마해송 선생님과 동화작가분들이 같이 발표하셨던 어린이헌장이다.1988년도 노태우시절 개정된 어린이 헌장은 세련된 맛은 있어도 사람의 폐부를 찌르지는 않는다.
- 어린이는 인간으로서 존중하여야 하며 사회의 한 사람으로서 올바르게 키워야 한다.
- 어린이는 튼튼하게 낳아 가정과 사회에서 참된 애정으로 교육하여야 한다.
- 어린이에게는 마음껏 놀고 공부할 수 있는 시설과 환경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 어린이는 공부나 일이 몸과 마음에 짐이 되지 않아야 한다.
- 어린이는 위험한 때 맨 먼저 구출하여야 한다.
- 어린이는 어떠한 경우에라도 악용의 대상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
- 굶주린 어린이는 먹여야 한다. 병든 어린이는 치료해주어야 하고, 신체와 정신에 결함이 있는 어린이는 도와주어야 한다. 불량아는 교화하여야 하고 고아나 부량아는 구호하여야 한다.
- 어린이는 자연과 예술을 사랑하고 과학을 탐구하며 도의를 존중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 어린이는 좋은 국민으로서 인류의 자유와 평화와 문화발전에 공헌할 수 있도록 키워야 한다.
난 부모님이 공부하라고 다그치면 헌장4번을 외워서 이야기하다가 종종 맞은 적이 있었다. 이건 잡설이고...
결론부터 말하자.
무상급식이 정치적 쟁점화가 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우리동네 후진국에 쌈마이 국가요. 라고 말하는 것 밖에 안된다.
갯벌 파 제낄 돈에 청계전 모터돌릴 돈은 있으면서 애들에게 무상급식 시킬 돈 2조가 마련되지 않았다고 이야기하는 마인드가 후진국 개발마인드라는 것이고
[사회주의적인 정책이니 포퓰리즘이니, 무상급식하면 다음엔 옷도 사주고 집도 사주나] 따위의 발언을 일국의 경제수장이 말한다는 것 자체가 쌈마이국가라는 것이다.
없는 놈만 주는게 타당하다.
일견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건 완전히 세상에 찌든 때 좔좔 묻은 어른의 세상보는 눈동자라는 거지.
가끔 아버지가 식사를 하시면 종종 지난했던 과거지사를 이야기하신다. 그 중의 압권은 가난했던 학생시절이다.
월사금 못 내서 선생에게 쥐어터지던 이야기는 늘 나오는 단골메뉴다. 왜 아직까지 기억을 하실까? 선생놈을 씹어먹지 못하고 평안하게 칠성판에 눕혀 죽게 만드신 것이 천추의 한이라? 칠순의 아버지가 그 선생놈 묘자리라도 찾아가서 부관참시라도 하면 마음이 풀어지려나? 천만의 말씀에 만만의 콩떡. 답은 이거다.
같은 급우들 앞에서 모욕을 당했으니까.
당신들 어렸을 적에 당한 트라우마가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 눈에 아른거리면서
왜 지금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은 골라서 차별을 받는게 타당하다고 생각하는가.
어른들이 갖고 있는 게임의 법칙을 굳이 아이들의 세계에까지 확대해서 가르칠 필요는 없다. 그것이 인생이라고 말하는 하드보일드들이 분명 있을 것이고, 여기에 [무한경쟁의 시대]따위의 양념을 치는 사회의 권력층들이 존재할 것이다. 언젠가부터 의무교육은 경쟁교육이 되어버렸고 사교육시장이 애들을 가정과 학교에서 빼앗아가버렸다. 물론 우리 때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의식주 중 하나를 [기초교육]이라는 측면에서 옵션으로 걸고 넘어지는 짓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한경쟁으로 경제가 힘들어져서 못먹는 애들이 생기고 경제적 불평등이 생겼다. 최소한 균등함이라는 것을 [기초교육]의 의무로 삼는다면 먹거리가지고 장난질은 치지 않아야하는 거 아닌가?
누군가는 나라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는 밥 먹고, 누구는 부모님이 싸주는 밥 먹고, 누구는 부모님이 사준 돈으로 햄버거 사 먹는 꼬라지가 사춘기도 안 지난 애들의 공간에서 동시에 벌어진다. 이게 반상의 구별이지 뭐냐.
앞에 써 놓은 57년도 어린이 헌장을 다시 한번 읽어보자.
이 잘난 21세기에 1번부터 9번까지중에 뭐 하나 지켜지는게 있는가를.
우린 돈 앞에 영혼을 숭덩숭덩 뭉태기로 썰어 팔아 처 먹고 있는 중이다. 동정으로 긍휼로 국가를 지탱하는 중세시대의 미덕은 더 이상 현대사회를 유지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제발 위정자들은 알아주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