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있고 사람이 있고'에 해당되는 글 79건

  1. 2021.01.23 2021년이라는 시간을 받으면서
  2. 2016.09.26 근조
  3. 2015.04.18 세월호 유가족을 경원시 하지 않는 이유
  4. 2014.10.27 각자위정(各自爲政)의 유래
  5. 2014.05.02 자승자박
  6. 2013.12.18 안녕들 하십니까
  7. 2013.06.26 신의없음 3
  8. 2013.05.19 5.18
  9. 2012.12.25 선거소회 2
  10. 2012.12.20 2012년 12월 19일

이런 날이 내 인생에 올 것이라 믿지 못하던 시간이 왔다.

2021년이라면 나는 이제 근 오십을 앞에 두고 있는 나이이다.

너무나도 오래 살아온 나이다. 이제 무엇을 더하고 더 이루어야 하기 보다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감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은 늘 부족하다고 여기는게 사람인지라 여기서 뭘 빼야 하는지를 찾아보라 한다면 갈등해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아들과 딸이 생겼고 가정이 있고 오래 된 차가 있고 전세집이 있다. 이제 전세는 세월의 귀퉁이로 넘어가는 제도가 될 것 같으니 남아있는 것은 사람과 쇳덩이이다. 이 중에 가장 먼저 처분될 것은 자동차일 것이다. 10년은 아직 안 되었지만 몹쓸 주인의 우격다짐 주행에 여기저기 크고 작은 상처들이 가득하다. 그 다음은 장성하여 떠나갈 자식들일 것이고 그 다음은 얼마 안 남아있을 내 육신일 터인데

 

이것들 모두를 처분하려면 아직 시간은 조금 남아있을 듯 싶다. 돈은 애초에 가져본 적이 없으니 논외의 물건이다.

이제 그나마 모든 것을 덜어놓을 때 하나 가졌으면 하는 것이 있긴 하나

그것은 애초에 내가 원한다 하여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때가 맞아야만 가질 것이니

 

그저 하늘을 바라보며 맘을 편하게 먹어야 할 것인데

그런 마음은 어디론가 가 버리고 조급함만 남았다.

 

2021년이 오면 나는 도를 얻을 줄 알았건만.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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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탈을 쓰고 권력을 잡은 뒤 악마성을 드러낸 민족의 반역자와 그 후손들에게 대대손손 저주가 있을지라.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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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다


이 나라 대한민국의 사회, 재배 대비 안전망과 경제전망 및 향후 발전가능성을 볼 때


나는 대통령이 될 확률보다 유가족이 될 확률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위에서 대충 말 한마디로 참변을 덮어버리고

사람들이 원하는 목소리를 경제적 이익과 이념적 반동으로 치환하고

그들의 아우성을 사회 불순세력으로 만들 수 있는 위치와 권세와 혈연 및 학맥이

나에게는 전무하기 때문이다.


이 나라는 모든 것이 갖춰지지 않으면 사회에서 여론을 형성할 수 없다.

그 모든 것에는 돈과 지위 뿐 아니라 혈연과 지역같은

일반인이 선택하지 못하는 범주의 태생적인 한계가 엄연히 존재한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세월호 참사를 어느정도 방관한다고 생각한다.

왜? 그들이 짐승이고 괴물이어서?


아니다.

그들은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 지 머리로 이해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대학생일 때 부모에게 넉넉하게 용돈을 받아서 집과 학교를 등교하던 시절

나는 내 동기가 왜 알바를 그리도 바지런히 뛰어야 했는지 알 수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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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위정(各自爲政)이라는 고사는 '모두가 제 멋대로 알아서 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현장이 지휘통솔 안되는 오합지졸들로 잔뜩 꾸려져 있을 때나 씀직한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의 어원은 좀  특이하다.


춘추시대의 강자 초장왕이  송나라를 칠 때의 일이다. 이 때 송나라의 군권을 쥐고 있던 대장군 화원은  초나라 연합군의 공세를 막기 전, 병사들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 특식으로 양고기를 지급했다. 그런데 이 때, 그는 그의 전차를 모는 양짐이라는 기수에게 양고기를 주지 않았다.


병사들이 그 이유를 묻자, 화원은 " 싸우는 병사들이나 먹는 것이지, 마차 모는 사람에게 양고기가 무슨 소용이냐."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양짐이 듣고 마음 속에 담아 둔 것은 물론이다.

다음날 초나라와의 전쟁이 시작되자, 화원은 병사들을 진두지휘하며 초나라연합군에게 돌격했는데, 양짐이 갑자기 적 한복판으로 마차를 단기로 몰고 들어간 덧이다. 화원이 깜짝 놀라서


"너 지금 뭐하는 짓이야?" 하니까


"양고기 배식은 네 재량이지만 이 마차 모는 건 내 재량이야." 하고 양짐이 말하고는 그대로 초나라 연합군에게 투항해 버렸다. 순식간에 대장군이 잡히니 송나라는 지휘계통을 잃고 대패를 해 버렸다. 참으로 쪼잔한 장군과 1호차 운전병의 최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지금도 각자위정이라는 말은 서로가 협심단결하지 못하는 상황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고 많은 언론들은 양짐의 이기적인 행동을 힐난하며 총화단결하여 난관을 넘어가자는 말로 이 고사성어 소개를 마무리 짓곤 한다.


*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시대도 바뀔 만큼 바뀐 상황 아닌가. 

문제의 중심은 양짐이 아니라 화원이다. 전국시대의 마차라는 것은 chariot, 한마디로 군사용 돌격전차인데 그 중에서도 자신을 모시고 전장을 누비는 사람이라면 중요도가 여느 병사 못잖은 사람일 것이다. 1호차 운전병이면 그 대우가 남다를 것 아닌가. 그런데 여기서보면 그냥 내 운전수는 양고기 따위 안 먹어도 된다고 화원은 생까지 않는가. 이건 무엇인가.


화원이 병신이라 1호차운전병이 비전투병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닐게다. 명색이 대장군인데 그럴리는 없다.

이건 그냥 경멸이다. '내 밑에서 기는 놈이니까 내가 하자는 대로 하면 된다.'라는 사고방식 아닌가. 무슨 일이 있어도 1호차는 잘 달려간다는 믿음, 같은 차를 탔으니까, 운명공동체니까. 나 때문에 살고 있는거니까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식의 논리, 전차는 그저 내 소유물이라는 태도. 이것이 화원의 운명을 결정지었다고 생각한다.

 화원에게 양짐은 그냥 마부석에서 이리저리 방향전환을 하는 일종의 [물건]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은 자신이 양짐에 의해 생사여탈권을 박탈당하고 적의 포로가 된 뒤에야 박살이 나게 되었으리라.  다른 인간을 경멸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같은 눈높이에서 보게 되는 경우는 자신이 경멸을 당하게 되는 순간일 뿐이리라. 


나는 그 쪼잔한 양짐의 행동이 100%는 아니더라도 50.1%는 이해가 간다. 요즘같은 갑을의 시대일수록 그 심정이 무엇인지 공감을 크게 할 수 있으리라. 각자위정이라는 말에서 사회가 도출해내는 교훈은 참으로 폭압스럽다. 하지만 그 아래에서 왜 그렇게 그 사람이 행동했는 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말이 없다.


단지 양고기 한 점 떄문이었을까.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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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생각 없이 사람들이 하라는대로 하거나

관성에 의해서 일을 처리하다보면

꼭 업무상 사고가 터지기 마련이다.


늘 퇴고를 끝낸 원고에서 오탈자가 나온다. 내 신경을 다 써서 검증하고 검수한 글에서도 그런 오타가 나오는데 관습과 동정으로 일을 처리하는게 완벽할 것이라 믿는 것이 오만 아닌가?


하물며, 내 개인적인 일에서도 이런 경험을 하건만

왜 한 나라의 지도자를 뽑을 때 이런 생각들을 하지 않는가?


아버지가 대통령이라 자식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조지부시와 조지부시 주니어를 보았다.

부시는 그렇다 쳐도, 부시 주니어가 한 일이 대체 뭔가?


그런 놈이 되어서 9.11이 터진건지, 9.11이 벌어지려니 그런 놈이 당선된 건지 알 수 없지만

하여간 그 놈을 좋은 대통령이라고 말하는 놈은 퇴임한 지 한참 된 지금까지 없다는 것이다.


그나마 조지부시는 2차대전 영웅이기라도 했다.



대체 이 작은 나라는 뭐 하는 짓거리냐?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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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들 하십니까


전후시절, 50-60년대 살아가던 내 아버지 시대의 사람들은 인사가 이러하였습니다. 밥은 먹었습니까.

그 뒤 군사 쿠데타와 군사정권을 살아왔던 내 윗 시절의 사람들 인사는 이러하였습니다. 밤 새 안녕하셨습니까


민생고의 핍절함으로 인해 생존의 여부가 달렸던 시대에 밥을 먹었느냐는 말은 말 그대로 잘 살아 하룻밤을 넘길 만큼 건강하냐는 이야기였고, 억압과 폭거의 시대에 둥글게 살아가지 않으면 자신의 안위가 어떻게 될 지 모르던 시대에 밤을 잘 넘겼냐는 말은 그만큼 처신을 잘 했냐는 말이었습니다. 결국 이 인사는 개인의 실존과 관련됩니다. 의식주의 한계와 사상의 자유 속에서 우리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계속 지키면서 살 수 있었냐는 인사입니다.

밥은 먹었습니까.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그리고 2013년 겨울, 우리는 다시금 묻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밥을 굶지 않습니다. 영장없이 들어와서 사람을 잡아가는 시대도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금 안녕하냐고 묻습니다. 무엇때문에 우리는 개인의 안녕을, 실존을 묻는 발언은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는 것입니까? 그것도 한 개인이 허공에 대고 쓰다시피 한 대자보에 호응하여 전국 각지에서 봇물 터지듯 하늘에 대고 외치는 이 물음은 과연 무엇입니까?


이것은 말 그대로 평안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내 실존의 개체와 주위의 환경이 맞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동안 50년대부터 줄기차게 저항하여 왔던 민중들의 승리로 인하여 여기까지 올라 온 우리들의 자존심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가 갑자기 도래한 것에 대한 공포입니다. 경제적인 성과와 민주적인 성취를 통해 올라 선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자긍심이 어느 순간 모두 허물어지는 순간에 우리는 처해있습니다. 가계는 부채를 견디지 못하고, 고용은 살얼음보다 얇은 두께로 겨우 지탱되며, 나라의 성장은 위기에 처해있고, 기간산업은 되도않는 모습으로 외국의 자본과 재벌 앞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선배들이 피와 죽음으로 만들어 낸 민주화는 어느 순간 그들을 뒤에서 방관하고 저주했던 노추들의 집권으로 인해 모든 것이 역행되며, 사람의 말과 행동의 자유를 이념과 사상으로 옭아 매고 자신과 뜻이 다른 이들을 사상위반으로 몰아대고 있습니다. 공공재는 효율이라는 이름하에 민영화라는 이름으로 잘려서 판매되고,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얻어진 민주화라는 단어는 철없는 홍위병들의 선동아래 광대의 춤사위가 되었습니다. 지역감정은 살아나고 힘없는 자는 밥 한끼를 위해 자존심을 팔아가며, 예술가들은 입을 막히고 눈을 가리우며 펜대를 쥔 자들은 자신의 밥그릇을 위해 잉크에 독을 묻혀가며 사람들의 머릿속을 찔러댑니다.


이것은 모든 세대가 걸쳐 아침에 이웃과 나누었던 모든 안위의 말을 종합한 것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당신은 대한민국에서 인간으로 대접받고 있습니까?

당신의 자식은 대한민국에서 인간으로 대접받을 수 있을까요?

당신은 당신의 아버지와 선배들이 노력한 결과물 아래에서 더 나은 삶의 질을 영위하고 있습니까?

대한민국은 역사의 수레바퀴가 굴러가는 만큼 발전하고 있습니까?


안녕하십니까?



아니오.

우리는 안녕하지 못합니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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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 않은 삶이지만 이런 저런 사람들을 만나면서 사람들에 대한 호오의 기준이 세워진 터이다. 

각자 많은 기준들이 있을지언정 세상사람들의 기준이나 나의 기준이나 그리 크게 다르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람이란 원래 이기적인 동물이요, 그들이 모여사는 것이 사회이니 사회에서 만나서 호감을 갖는 방법이라는 것이 결국 이기적인 둥물 사이에서 지켜야 할 일종의 도리같은 것이다. 바꿔 말하면 사회의 규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싫어하는 것이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다.


내 개인적인 기준으로 가장 좋아하는 부류는

시간이 아무리 지나고 처지가 바뀌더라도 흰소리 아쉬운소리 아무때나 주고 받을  수 있는 사람이다. 이것은 내가 그 사람을 신뢰한다는 것이요. 신뢰한다는 것은 아무리 처지가 바뀌더라도 저 사람이 나에게 다른 마음과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가 깔린다.


반대로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인간은

언제봐도 자기 속내 먼저 챙기고 아쉬울 때만 연락하고 자기 편하면 생까는 부류의 인간이다. 그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속성인 [이기심]을 극대화 시켜 일신의 평온만을 추구하는 것이요, 나 또한 다른 사람에게 언제 저렇게 보일까 주려워 전전긍긍하는 터이니 이것을 가리켜 선조들은 [염치]라고 불렀다.


하물며 개인의 삶이 이러한데 국가의 삶이나 단체의 삶이 또한 다르랴.


북한이 계속 욕을 처먹는 이유가 자신의 보전을 위해 국제 사회의 규약을 조변석개하면서 무력시위를 일삼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저 시장패의 왈짜나 하는 짓이요 자신의 평안을 위해 타인을 겁박하는 짓이니 사해평화에 호말의 도움도 되지 않는 집단인 법이다. 체제유지를 위해 타국민들을 괴롭히니 세계 제국의 눈총을 받고 제재를 받음에 하나 억울함이 없다 할 것이다. 



그런데 근자 우리 나라에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

나라의 법이 있고 외교의 도리가 있는 법인데 자신의 정치적 처지가 위태롭다 하며 전직대통령의 비밀외교문서를 만천하에 공개하는 파렴치한 말종들이 생겨났다. 외교라는 것은 엄연히 혀로 하는 검투요, 그 안에 수많은 책략과 모사가 춤추는 법이건만 어줍지 않은 율사들인양, 철부지 신학자인양 함의가 산더미같은 대화록을 문자주의로 해석하며 멋대로 유추하여 전혀 다른 사달을 만들어내니, 이것이 어찌 다 성장한 어른들의 짓이라 할 수 있단 말인가?


더 큰 문제는 나라의 정치를 어지럽히는 것이 아니다.

사회에서 사람들 사이에 통용되는 기준이나 다름없는, 외교가의 묵언을 깨 버리고 만천하에 비밀을 까발리는 작태를 보인 정치가들이다. 이것은 천하 각국에 '우리는 당신네들과 이야기할 때 더 이상 비밀을 준수하지 않을 것이오'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우리는 북괴와 대화할 때만 이럴 것이고 다른 나라와는 그렇지 아니하오"라고 항변해봤자 그게 타인에게 받아들여 질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바꿔서 생각해보라. 돈꿔가서 안 갚는 놈이나 알던 사람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 "이건 저 인간에게만 하는 일이고 당신과는 하지 않아"라고 말해봤자 그 말을 실제로 믿는 놈이 누가 있단 말인가?

"말이야 저러지만 인간의 근본이 애초에 틀렸구나"라고 생각하게 되는 법 아니랴. 세상 이치가 이와 같고 국가간의 위치가 이와 같다.


결국, 이번 사달은 그나마 이어지던 외교가의 염치를 벗어던지고 대한민국이 천하의 건달에 왈짜요, 수틀리면 판을 엎어버리는 불한당국가라는 명함을 얻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번 정권은 나라를 양아치로 만들었다.


정상적인 가정에서 정상적인 교육을 받고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가진 자들이

이런 일을 벌였을까?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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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羞惡之心非人

무수오지심비인


사람이 부끄러워 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하물며 타인을 위해 돌아가신 이들을 위해, 다음 세대를 위해 거악을 향해 총칼을 든 이들에게 조용히 조문을 하지 못할망정 조롱하며 망동을 부리는 것은 듣고 자람에서 사람다움을 상실한 것이니


그것은 장난도 아니고 떼거리문화도 아닌 그 사람의 본성일 뿐이다.

그릇되었으니 곧 사람이 아닌 것이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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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에게 욕먹을 말이지만 그냥 쓰련다. 

1주일이 넘었는데도 생각이 바뀌지 않으니까.






우린 그냥 주인이 싸 주는 똥에 한없이 감사하며 혀내미는 똥개의 자식들이었던거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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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5월16일 이후, 50여년간 줄기차게 투쟁해온 민주주의의 역사는 통째로 부정당했다.


사람들은 스스로의 자결권과 권리에 있어서 국가의 간섭을 받지 아니한다. 스스로가 주체가 되며 그것으로 인해 민의는 자유로움을 대변하는 국가운영의 기초가 된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이것은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거대한 우로보로스가 되어 민주주의의 머리가 꼬리를 씹어먹으며 결국 사라지게 될 운명에 처해지게 되었다.


박근혜가 국정을 잘 운영하고 성군이 될 지도 모른다. 아버지 박정희와는 비교 안되는 대통령의 자질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지금 박근혜 개인을 비난하는 것이 아닌, 대한민국의 역사를 거꾸로 흐르게 한 국민들에게 비난의 말을 돌릴 수 밖에 없다. 가치판단의 근거를 역사에서 찾지 못하는 민족 앞에 무슨 발전을 기대할 수 있는가. 

그리 오래 된 시간이 흐른 것도 아니다. 알 던 사람, 선배, 어른들이 그렇게 고생을 하며 죽음과 신체의 구속을 감내하며 투쟁하여 획득한 참정권을 가지고 독재자의 딸과 독재정권의 후신을 밀어줬다는 이 모순된 비극을 뭐라고 설명할수 있을까? 소포클레스가 글을 써도 이것만큼은 못할 것이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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