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새끼 키우는 것이 고생이지만 그만한 복락도 없다고 부모형제친구동기후배들이 모두 입을 모아 이야기하고 나 역시 그것이 굉장히 큰 즐거움이라는 것은 알지만 솔직히 그것이 무언지 모른다.
예전에 황석영의 [장길산]을 보면
거칠것 없는 홀홀단신으로 살던 길산이 어느날 아들을 얻은 뒤 아들이 품에 덜커덕 안기는 순간 모름지기 평범한 사내의 가슴에 얹힌 무게를 알아버리는 장면이 나온다만...이것을 내가 머리론 알아도 어찌 지금 심상으로 알 손가.

네가 아무리 난 척 한다해도 배고픈 이의 설움을 알겠느냐
하루하루 고달픔에 토악질을 해댈지언정 일을 손에서 놓는 순간 나락으로 떨어지는 환경을 아느냐
그것마저 떨궈지고 잡을 것이 없어서 허위허위 길바닥에 나가본 심정을 아느냐

물론, 비빌데 없고 순식간에 백수한량이 되어서 실업급여 타먹으며 6개월여를 버틴 적도 있다만
집을 팔고 가산을 저당잡히고 밖으로 나가서 막막하니 돌아다녀 본 심정이래야 알아도 느끼질 못하는 것이다.
누군가 내 앞에서 저렇게 정색하면 속내야 어떻건 사람을 기롱하는 언사라 느낄지라도
그 안에 뼈가 있고 내가 그것을 취하지 못함 역시 엄연한 사실이다.

봄에 파종하고 가을에 추수할 때까지 농부가 들에서 천번을 허리굽힌다 하는 것을
내가 머리로 알지 그 속내를 어찌 들여다 보겠는가.
사람은 머리로 알고 머리로 말하지만 가슴은 비었으니 느끼지 못하는 것을 안다 말할 수 없다.

네가 이걸 아느냐 네가 이걸 정녕 아느냐
누군가가 이렇게 물을 때
뻔히 '나는 모른다'는 대답을 듣고서 그 사람이 뭔가 승(勝)한 감정을 갖거나 교(敎)를 외치거나 책(責)을 하려 든다는 것을 알고 있더라도 대들지 못하는 것에는 그러한 모든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있는 것이다.

사람은 절대로 만인의 경험을 한 몸에 가질 수도 없고 그것을 할 만큼 많은 시간을 보낼수도 없는 동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지못한다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과 모르는 것을 알고자 하는 욕심이 있으니
뒤집어 생각하면 얼마나 교만한 동물인가. 백년도 못살면서 천년의 근심거리를 갖는다는 게 이것 아닌가?





나는 모른다 경험한 바 없으니 모르는 것이 당연하고
너 또한 나의 경험을 모르니 나에 대해 아는 바 없음이 당연하다

이것이 삶에 있어서 진실이고 가장 탕평한 일일 것이다만......

세상은 그렇게 쉽사리 돌아가지도 않을 뿐더러
나는 인간인지라 쓸모없는 욕심이 하늘에 치달아
내가 알수도 없는 것에 대해 알고 싶은 욕망을 가진 채
더불어 필요없는 부끄러움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일게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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