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처럼 서울 시내에 눈이 흐벅지게 내린 적이 있었나 싶다.
어딜가나 하얀 색밖에 안 보이는 풍경.
김포공항 국내선마저 끊겼다고 하던데.

뜬금없이
아에로플로트 이야기가 생각난다.
아에로플로트, 일명 러시아항공. 
예전 언제였던가 노태우인가 김영삼인가 북방외교를 하고 난 뒤
북방항로가 하늘에 열리고 나서 우리나라가 러시아에 갈 수 있게 된 뒤
러시아 유학을 다녀온 이들에게서 들어본 항공사 이름이 [아에로플로트]였다.

아마 그들의 입에서 들려온 이야기는 십중팔구 뻥+ 과장이었겠지만
하여간 그 당시 내가 들었던 [아에로플로트]항공의 이야기는 정말 무서웠다.

1. 조종사가 모두 예전 냉전시대의 미그기 조종사기 때문에  전투기처럼 여객기를 몬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활주로에 이착륙한다는 것이었다. 비가 오던 폭풍이 오던
    블리자드가 몰아쳐도 활주로가 폭파되지 않는 한 아에로플로트는 뜨고 내려앉는다는 것이다.
   (이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당시에 나는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2. 수직낙하, 급속상승을 여객기에서 경험할 수 있다고 했다.
    당시 아에로플로트의 여객기종은 상당히 낡았었기에, 터불런스가 좀 심하게 온 모양이지만
    하여간 나는 이 말도 당시에는 철석같이 믿었다. 당연한거 아닌가. 미그기의 나라인데!

3. 최후의 흡연항공.
    이건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아에로플로트의 뒷자석에는 흡연구역이 있었단다. 근데 하나도 어색하지
    않았다. "당연하지, 미국하고 50년을 맞장 뜬 나라인데...뭔가 달라도 다른게 있는거야"라는 식으로 나는
    이해하고 넘어가 버렸더랬다.

4. 스튜어디스가 엄청 무섭다.
    기내식도 주는대로 받아 처먹어야 하고 뭐가 필요하면 "소 와아뜨?"하고 건장한 슬라브 장정, 아니 여인이 
    대답한다는 것이었다. 아마 당시 국제항공에 뒤어든 아에로플로트의 기내 서비스는 좋은 편이 못 되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기혼/중년여성들이 스튜어디스로 활약하는 유럽항공을 접해볼 기회가 별로 없는 한국인들에게
   아줌마가 와서 [뭐가 필요해?]하면 좀 뜨악스러웠겠지. 
   하지만 나는 이것도 철석같이 믿어버렸다.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동토의 여성들은 강인한거야! 라는 생각이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지금은 러시아 아가씨가 말이라도 걸어오면 국적도 바꿀 태세면서.

하여간 그런 카더라 통신들을 들었고, 아에로플로트 하면 그런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오죽했으면 유럽여행을 갈 기회가 있었을 때 아에로플로트보다 조금 더 비싼 KLM을 타고 갔을까. 

해가 가고 날이 가면 그런 이야기들 중에 진실에 가까운 것은 거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끔 그 생각이 나는 걸 보면
확실히 뜬구름잡는듯한 허황된 이야기가 사람들의 구미나 두뇌에 더 많이 남는 것일까?

갑자기 눈이 엄청나게 온 날 저녁 드는 뜬구름같은 생각.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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